비둘기 빛 승복이 제대로 어울린다. 원성 스님의 동자승 그림책에서 또박또박 걸어 나온 듯한 표정이다. 만화에 '용맹정진'하는 김태진(13)에게 무슨 만화냐고 물었다.자신이 주연한 '동승(童僧)'이 베를린영화제 킨더필름페스트(아동영화 부문)에 진출해 지난 9일 서울을 떠나던 날에도 그의 손은 만화를 놓지 않았다. 요즘도 선승이 화두를 잡듯 만화를 붙잡고 있다. "얘기하면 길다"고 자르는 바람에 어떤 만화인지는 더 묻기가 어려웠다. 열흘이나 어머니와 떨어져 베를린에 있었는데 보고 싶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이제 컸잖아요" 라며 다시 만화에 고개를 파묻는다. 그래도 곧 중학교 2학년이 되는 그는 제법 의젓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5년 동안이나 영화를 찍느라 공부도 제대로 못했겠다"고 넘겨 짚었더니 가볍게 "너무 방해가 됐어요"라고 받는다. 출연료를 받은 기억도 없고 고생스러웠지만 베를린에서 박수를 받아 너무 좋았다는 게 5년 동안의 배우 체험을 돌이키며 그가 꼽은 기억이다. 주머니에서 사탕을 한줌 꺼내 주변 사람들에게 권하는가 하면,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는 등 인터뷰 내내 산만해 보였다. 곁에 있던 주경중 감독이 거든다. "이러다가도 연기에 들어가면 대단한 집중력을 발휘합니다."
김태진은 물론 동승이 아니다. 모태 신앙으로 시작한 기독교 신자다. 주 감독은 1999년 주인공 역을 결정한 상태에서 엑스트라 한 명을 더 뽑으려는 오디션에서 '눈빛이 굉장히 독특한 배우'를 발견했다. 바로 김태진이었다. TV에서 단역으로 몇 번 얼굴을 내민 그는 엑스트라가 아닌 주역 도념 스님으로 바뀌었다. "머리 깎는 것만 싫었고, 다른 건 아무 생각 없었다"는 그는 다시는 머리를 안 깎겠다지만 포스터 촬영을 위해 또 한번 삭발을 해야 한다.
안동 여수 순천 태백 등 전국의 사찰을 떠돈 영화 만들기는 내내 힘들었다. "경치 좋은 절을 돌아다녀 좋긴 했지만 절만 다니니 심심했죠. 친구도 없잖아요. 엄마랑 전화하거나 게임하며 혼자 놀거나, 곤충 잡고 물놀이 하는 재미로 버텼어요."
영화를 찍으면서 우여곡절도 많았다. 닭고기를 몰래 먹다가 큰 스님(오영수)에게 들켜 종아리를 맞는 장면에서는 펑펑 울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촬영이 중단됐다. 제작진은 고심 끝에 안동 봉정사로 피자를 배달시켜 간신히 이 동자승의 울음을 멎게 했다. 기쁜 일은 없었냐고 묻자 조 감독 눈치를 보다가 의자를 앞뒤로 흔들며 "감독님한테 칭찬받은 거죠"라고 대답했다. 베를린 조 팔라스트 극장에서의 박수소리도 잊을 수 없단다.
김태진은 과학 과목을 좋아하고, 로봇 만들기가 취미이며 타임머신을 만드는 게 꿈이다. "친구들이 너 언제 TV 나오느냐고 물어요. 친구들은 신문도 TV뉴스도 안 보잖아요. 제가 일일이 알려줘야 해요. 그게 조금 섭섭해요." 앞으로 영화를 계속 하고 싶으냐고 물으니 빙그레 웃기만 했다.
어머니를 그리워 하는 동자승의 이야기를 담은 '동승'은 외국에서 먼저 선을 보인 후 4월11일 국내 관객에게 온다.
/이종도기자 ecr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