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아파 소화제를 자주 먹습니다. 소화제의 어떤 성분이 어떻게 소화를 돕는지 궁금해 이 실험을 시작했습니다."CBS영재학술원의 4학년 과학 프로젝트수업 발표장. 다섯 번째 발표자로 나선 나래(10)가 실험과정을 설명한다. "같은 양의 빵에 같은 시간동안 활명수, 속청, 데니에이, 베아제, 베스타제를 넣었더니 활명수와 속청에서는 빵이 다 소화되었습니다." 이어 같은 양의 기름덩어리(지방), 고깃덩어리(단백질)에도 실험을 했다는 나래는 "단백질과 지방은 베아제, 베스타제가 가장 소화력이 강력했다"며 "이들 소화제에는 지방의 분해를 돕는 효소 리파아제가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질문시간에 서너명이 앞다투어 손을 든다."활명수가 빵을 소화시켰던 것은 농도 때문이 아닐까요? 가루소화제는 녹이면 아무래도 농도가 낮아지잖아요."(병준) 나래는 "실험조건을 통제했습니다. 가루소화제에 넣은 물은 알약 먹을 때 삼키는 양 정도라 영향이 미미합니다"라고 똑 부러지게 답한다. 하지만 병준이가 재차 묻는다. "혹시 각 소화제가 산성인지, 알칼리성인지 비교해 봤나요?" "예?" "소화 효소가 아니라 산성, 알칼리성이 소화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잖아요." 나래가 말이 막히자 선생님이 나선다. "아, 그렇네요. 산성, 알칼리성이 소화에 미치는 영향은 또 하나의 실험 주제가 될 수 있겠죠?"
짧은 질문시간이 아쉽지만 아이들은 다음 발표자를 위해 호기심을 잠시 접는다. 알코올이 어떻게 상처를 소독하는지, 손난로는 왜 저절로 따뜻해지는지 등의 발표가 이어진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인터넷 검색엔진, 중등 교과서에 신문 잡지까지 참고서적도 다양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역시 아이들이다. 발표하는 친구의 특이한 말투에 계속 킥킥거리고, 옆의 친구와 소곤거리기도 한다.
이 아이들은 조지프 렌줄리 미국 국립영재교육연구소장이 창안한 지능검사와 창의적 문제 해결력 검사로 같은 연령대중 상위 2∼3%로 인정받았다. 이 검사에서는 특히 과제 집착력이 강조된다. 윤여홍 소장은 "호기심과 왕성한 탐구력이 상상을 초월한다. 북한 핵 문제를 통해 핵물리학, 핵분열 등 관련 주제를 열심히 탐구하는 아이들도 있다"고 말한다.
널려 있는 지식을 어떻게 소화·가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가 영재의 관건. 권희수 부소장은 "때로 중등교과서를 참고하는 것도, 순전히 그 안에 필요한 지식이나 문제해결 도구가 있기 때문이다. 미리 공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고 강조한다.
상당수 영재들은 학교에서는 말을 아낀다.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다 말하면 이상한 아이로 취급받기 때문이다. 스스로 문제 해결력을 갖추고 있어, 선생님이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학습 방식도 맞지 않는다. 때문에 일주일에 한두 번 받는 영재교육으로 '숨통이 트인다. 빛이 보이는 것 같다'고 말하는 아이들도 있다. 눈치보지 않고 마음껏 질문하고 생각할 수 있어서다.
올해부터 서울시내 4개 지역교육청에 영재교육원이 신설되는 등 초등학교에서도 영재교육이 본격화된다. 프로그램, 선발 기준 못지않게 전문가들은 '교사의 전문성'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한국교육개발원 영재교육팀장 한석희 박사는 "영재교육 담당 교사가 충분한 동기를 갖고, 계속해서 그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학교나 교육청에서 정책적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양은경기자 ke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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