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가 미국과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이유는 돈의 액수 때문이 아니라 신용카드는 받지 않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터키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지원하는 대가로 단지 도움을 보장 받기보다는 즉각적인 현금 원조를 바라고 있다. 누구나 짐작하듯이 부시 미국 대통령은 신뢰에 문제를 안고 있다.재미난 것은 미국 정부가 신뢰를 지극히 중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라크 침공에 대한 정당화가 핵 무기 개발에서 오사마 빈 라덴과의 연계, 악의 존재로 왔다 갔다 함에 따라 전쟁은 점점 더 신뢰의 문제가 되었다. 이미 군사 배치를 다한 마당에 공격을 하지 않으면 세계가 미국을 우습게 볼 것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신뢰는 자신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벌하는 것만이 아니다. 약속을 지키고 진실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부시 행정부는 이 부분에 문제가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멕시코는 마지못해 미국에 표를 던졌다. 미국과의 긴밀한 경제관계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자동적으로 미국의 뒤에 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빈센테 폭스 멕시코 대통령은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는 멕시코 불법 이민자들의 지위를 합법화하겠다는 약속을 조건으로 미국내 히스패닉계 유권자들을 끌어들이려는 미 공화당을 지원하는 정치적 위험을 감수했다. 하지만 미국은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폭스처럼 부시에게 배신감을 느낀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부시는 9·11 테러 며칠 뒤 뉴욕 시의원들에게 넉넉한 지원을 공언했지만 그뿐이었다. 몇 달이 지나자 시의원들은 부시 행정부의 실천 의지를 의심했고 미치 다니엘스 예산국장 사이에 설전이 오갔다. 소방관과 경찰들도 35억 달러를 지원하겠다는 부시의 약속에 박수를 보냈지만 현재까지 단 한푼도 받은 바 없다.
요즘은 부시가 아프리카 에이즈 퇴치 프로그램 등 무언가 새로운 약속을 할 때마다 그를 잘 아는 이들은 "스위치는 어디냐"고 되묻는다. 새 프로그램을 위한 돈의 대부분이 말라리아 억제와 같은 다른 원조 프로그램으로부터 옮겨올 것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직에 관한 문제도 있다. 경제 문제에 관한 부시의 거짓말은 2000년 선거 때부터 노골적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거의 병적인 수준에 도달했다. 유명 경제학자들이 자신의 경제계획을 지지하지 않아 애를 먹던 부시는 지난 주 '블루칩'이라는 경제학자의 최신 보고서에서 지지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보고서의 저자는 "도대체 어디를 인용했는지 모르겠다"며 부인했다.
아마도 미국인들이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처럼 확실하지 않은 주장들이 다른 나라들로 하여금 부시 행정부의 대외 정책을 불신하게 만드는 정도일 것이다. 미 정부는 이라크에 불리한 여러 증거들을 끊임없이 제시하고 있지만 결국은 잘못된 것이거나 가치가 없는 것으로 판명이 나고 있다.
부시는 미국 내에서는 신임을 잃지 않고 있다. 미국민들은 아직도 세계무역센터의 잔해 속에서 소방관들과 어깨를 걸고 서있던 대통령의 감동적인 모습을 기억한다. 미국 언론들도 부시의 지켜지지 않는 약속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진실을 말하지 않는 부시를 믿지 않는다. 미국이 신뢰 없이 대외 정책을 운영할 수 있을까? 미국 정부는 신뢰의 대안으로 위협을 생각하는 것이 분명하다. 미정부 관리들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미결정 회원들이 '잘못된' 편에 서는 것이 두려워 동조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한다. 이어 부시는 아마도 유엔이 전쟁을 마지못해 묵인하게 할 것이다.
하지만 비록 그가 그렇게 한다 해도 미국인들은 스스로를 속여서는 안 된다. 이라크 침공으로 미국이 얻을지 모르는 신뢰는 그것이 무엇이든 전 세계에서 잃게 될 신임을 아주 조금 밖에 보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폴 크루그만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NYT신디케이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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