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 오너인 최태원(崔泰源) SK(주) 회장을 부당 내부거래 혐의로 구속시킨 검찰이 이번에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분식회계 혐의를 추가 적발함에 따라 SK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새 국면을 맞게 됐다. 더욱이 분식회계는 통상 불법 자금 대출과 비자금 조성 등으로 이어지는 만큼 검찰 수사 과정에서 제2, 제3의 혐의가 추가로 밝혀질 경우 메가톤급 파장이 예상된다.SK글로벌 회계장부 분석을 통해 검찰이 파악한 SK글로벌의 분식회계 규모는 1조4,000여억원으로 금액상으로는 대우그룹의 23조∼40조원, 기아그룹 4조5,000억원에 이은 사상 3번째 규모로, 동아건설 한보그룹의 7,000여억원 보다는 배나 많다. 그러나 이들 회사의 분식회계 사실은 부도위기 상태에서 밝혀진 것이라는 점에서 SK글로벌과는 전혀 사정이 다르다.
지난해 4월 발표된 2001년도 결산보고에 따르면 SK글로벌의 매출액은 18조원으로, 1,3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것은 매출채권 등 수익성 항목에서 수천억원씩이 부풀려진 허위 자료로, 실제 분식 금액을 일시에 털어낼 경우 적자 폭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회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분식회계에는 몇 가지 전형적 수법이 있는데 SK글로벌의 분식회계 방법도 이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가장 대표적인 수법이 가공채권 계상. SK글로벌은 2001년말 결산 당시 당기순손실을 줄이기 위해 존재하지도 않는 가공채권 1,500억여원을 회계장부에 포함시켜 매출채권을 부풀렸다.
또 미국 유럽 홍콩 등지의 해외 법인에 출자했다가 입은 손실을 줄이기 위해 해외 법인의 순자산을 부풀린 뒤 2,400억원의 지분법 평가손실을 사업보고서에서 누락시켰다. 모회계법인 관계자는 "이 정도의 손실을 감출만한 대기업은 국내에 몇 안 된다"며 "SK글로벌의 매출액 등을 감안할 때 상태는 썩 좋아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동안 검찰 주변에서는 최 회장이 영장실질심사도 신청하지 않는 등 별다른 '저항' 없이 구속되는 것을 보고 검찰이 보다 확실한 단서를 잡은 것 아니냐는 추측이 무성했다. 결국 검찰이 최 회장을 꼼짝없이 옭아맸던 비장의 카드는 다름 아닌 '분식회계'였던 셈이다. 검찰이 지난 17일 SK그룹 사옥에 대한 압수수색에 이어 SK글로벌 재무서류들이 보관돼 있던 SK연수원에 대해 실시한 기습적인 추가 압수수색도 이 같은 분식회계의 물증 확보 차원에서 이뤄졌던 것이다.
검찰은 그러나 분식회계 금액이 조(兆) 단위에 이르자 난감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자칫 SK가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는 한 회계 전문가의 진단은 검찰의 고민을 짐작케 해준다. 검찰이 기존의 속전속결식 사건처리와 달리 손길승(孫吉丞) 회장 등의 소환 일정을 다음주로 늦춘 것도 이 같은 고민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수사 범위와 방향을 재결정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또 향후 수사에서 부당 대출이나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가 추가로 드러날 경우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것이 틀림없다.
조작된 회계자료를 믿고 투자한 선량한 소액 주주들은 무너진 기업 도덕성에 대한 질타와 함께 집단 소송까지 제기할 것으로 예상돼 SK의 분식회계가 몰고올 파장은 예단할 수 없게 됐다.
/강훈기자 hoony@hk.co.kr
박진석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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