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년 2월27일 서양화가 김환기가 전남 신안에서 태어났다. 1974년 뉴욕에서 몰(沒). 김환기는 1970년 한국일보사가 주최한 '한국미술대상전'에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점화(点畵)를 출품해 대상을 받았다. 그는 이 그림에 대해 "뉴욕에서 밤하늘의 오묘함을 바라보며 고향과 친구에 대한 그리움을 점 하나하나로 찍어갔다"고 술회한 바 있다. 김광섭의 시 '저녁에'에서 모티프를 취해온 이 작품 속에는 김환기의 생애가 출렁이고 있는 것 같다.그 생애는 떠돌이의 생애다. 김환기는 한반도 남서쪽 끝머리의 섬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발걸음은 예술의 자력선(磁力線)을 타고 땅과 바다를 가로질러 거침없이 내달았다. 스무살이 되던 1933년부터 1937년까지 그는 도쿄(東京)에 살았다. 그는 그 곳 니혼대학(日本大學)에서 그림을 배웠고, 동인 활동을 했고, 첫 개인전을 열었다. 서울로 돌아온 뒤에는 김향안(金鄕岸)과 결혼했고, 서울대와 홍익대에서 가르쳤다. 1956년부터 1959년까지 그는 파리에 살았다. 그 곳에서 그의 그림은 초기의 구상(具象)을 훌훌 털어내고 있었다. 다시 서울로 돌아온 뒤 그는 홍익대 학장이 되었고, 한국미술협회 회장이 되었다. 1963년부터 작고하기까지 그는 뉴욕 언저리에서 살았다. 그 곳에서 김환기 만년의 상징이 된 전면 점화가 활짝 꽃피었다.
김환기의 육체적 떠돎과는 무관하게 그의 마음은 한국에 붙박이로 머물렀던 듯하다. 이 서양화가가 손댄 유화, 과슈, 드로잉, 판화, 수채, 파피에마셰 어디든, 구상이든 추상이든, 그 밑바탕을 이루는 것은 예컨대 백자달항아리 같은 한국적 모티프였다. 그를 기리는 환기미술관이 1992년 서울 부암동에 문을 열었고, 신안의 생가는 지방기념물로 지정돼있다.
고 종 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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