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사정(司正) 속도조절'을 언급하자 검찰이 진의 파악에 부심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최근 검찰의 독자적인 수사 행보에 대한 경고 메시지가 아니냐는 분석과 함께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주장하면서 수사의 가이드라인을 설정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검찰은 노 대통령의 발언을 "SK그룹, 민주당 이윤수(李允洙) 의원 등 최근 진행중인 검찰 수사가 사정프로그램에 따른 것으로 비쳐지는데 대한 부담감의 표현일 것"이라고 보고 있다. SK그룹 수사를 신정부와 검찰간의 묵시적 교감에 따른 '재벌 길들이기'라는 해석이 나오면서 재계가 긴장하고 이로 인해 경제활동이 위축되는 등 부작용이 커지자 긴장 이완을 시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찰은 그러나 '사정 프로그램'으로 여기는 시각과 노 대통령의 언급에 대해 고개를 젓고있다. 특히 노 대통령 발언 이후 문재인(文在寅) 민정수석이 "정권의 의도와 무관하게 사정기관이 알아서 하는 상황을 염려한 것"이라고 설명한 데 대해 서울지검의 한 간부는 "우리가 알아서 기기라도 했다는 얘기냐"며 "자체 판단으로 결정했을 뿐, 정권 차원의 사정을 의식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사정 속도조절론'도 문제가 크다는 반응이다. 법무부의 한 간부는 "DJ정권 초기 검찰총장이 경제가 어렵다며 재벌 상대 수사를 자제토록 해 내부 반발을 산 적이 있다"며 "경제가 좋을 때 수사하자는 주장은 영원히 덮어두자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검찰의 정치적 독립성을 스스로 훼손한 발언이라는 지적도 있다. 대검의 한 검사는 "검찰 개혁을 위해 검찰권의 정치적 독립을 주창하면서 한편으로는 속도조절을 요구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노 대통령의 발언은 최근 검찰의 '독자적 행보'를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SK그룹 수사의 경우 정권과 사전 교감없이 검찰이 독자적으로 결정해 이뤄졌고, 이 때문에 노 대통령측이 몹시 당황해했다는 것이다. 검찰 개혁론과 개혁 장관 임명 등 안팎으로 수세에 몰린 검찰이 '정도대로 가겠다'고 나오는 상황에서 노 대통령측이 고삐를 죄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라는 얘기다.
/노원명기자 narzi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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