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바뀌었다. 전에 쓴 칼럼 '육교형 지도자들'을 떠올린다. 마지막 문구에 희망을 담았다. <지하도형이었던 전직 대통령들과는 달리, 김대중 대통령은 육교형 대통령의 이미지를 완성하기 바란다.> '지하도형'과 '육교형'이란 어느 관상가의 통찰력에서 나온 분류법이다. 지하도형은 먼저 계단을 쉽게 내려가지만, 나중에는 힘들게 올라가야 한다. 반대로 육교형은 힘들여 올라가지만 내려가기는 쉽다. 초기의 난관을 극복하고 안정 속에 대통령직을 마무리하기 바란다는 의미였다. 지하도형이었던>
김 전 대통령도 지하도형 지도자로 귀착된 듯하다. 역대 대통령이 한결같이 행복한 퇴임을 하지 못했다. 우리 현대사가 그만큼 가열 찼다는 반증이다.
주요한 업적들에도 불구하고, 김 전 대통령의 임기 말이 불명예로 얼룩진 것은 교훈적이다. 그것은 용인(用人)의 폐쇄주의와 정책의 비밀주의에서 기인하는 바 크다. 닫힌 정치가 맞는 귀결일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토론 공화국'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대통령 당선자 시절 그는 불쑥 특정 노조와 신문사를 찾아가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토론했다. 지난 정부와 다른, 열린 정치와 공개주의의 깃발을 치켜 든 것이다. 현장에는 문제도 있고 답도 있다. 토론은 난해한 문제와 명쾌한 답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다. 새 정부의 역할이 기대된다.
문화와 관련시킬 때, 현장을 많이 찾는 지도자는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같다. 지난해는 파리에서 열린 작은 규모의 한국 전통공예전에도 참석해 우리 장인들을 감동시켰다. 최근에는 미국영화의 지배를 막기 위한 프랑스영화인 모임에 나가 연설했다. 세계무역기구(WTO)의 다자간 무역협상 개방계획서 제출을 앞두고 열린 행사였다. 전통적 문화국가 대통령으로서, 강력한 미국문화의 도전에 맞서 프랑스 문화를 지키려는 영화인을 고무시켰다. 스크린쿼터제를 유지하겠다는 의미다.
우리 역대 대통령은 문화행사에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 문화와 관광이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산업이라는 외침도 아직은 공허하다. 문화의 중요성에 공감했다면 새 정부의 12대 국정과제에 문화 항목이 번듯하게 올랐을 것이다. '창조적 문화역량 강화, 문화적 창의성을 기반으로 문화산업 육성'이라는 의례적인 문구가 '11. 교육개혁과 지식문화 강국 실현' 속에 겨우 들어 있다.
대통령은 행복하게 퇴임하지 못했지만, 지난 정부 아래서 문화는 많이 성장했다. 하나의 업적이다. 동아시아에서 뜨거운 '한류(韓流)'바람이 일었고, 영화 '취화선' '오아시스' 등이 주요 국제영화제에서 잇달아 수상했다. 몇 년 째 할리우드에 맞서 한국영화 점유율이 40%대를 넘기고 있다. 그냥 얻어진 성과가 아니다. 스크린쿼터제를 지키기 위한 끈질긴 투쟁이 있었고, 문화예산을 초기 0.58%에서 1.1%로 끌어올린 정부의 의지도 뒷받침됐다.
성과가 주로 대중문화에서 나타났다고 낙담할 까닭은 없다. 고급문화의 성장은 더디다. 고급문화는 문화 인프라에 투자할 때 성장하기 시작한다. 문화인들은 이번 대선 공약에서부터 인수위 활동에 이르기까지 문화가 홀대 받은 느낌을 지우지 못한다. 새 정부의 문화관이 자못 미덥지 못한 것이다. 대통령은 도서관이나 미술관 극장 공연장 등의 현장을 스스럼 없이 찾아가야 한다. 빈약한 문화 인프라를 절감하고 타개책을 모색해야 한다.
문화는 삶의 질을 높이는 수단이자, 추구하는 가치 자체이다. 감수성을 갖추지 않으면 문화적 비전도 찾기 어렵다. 존 애덤스 미국 2대 대통령의 말을 인용해 본다.
<나는 전쟁이나 정치를 배워야 한다. 이는 우리 어린이가 수학이나 철학을 배우는 자유를 누리기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면 언젠가 그들의 아이들은 미술 시 음악 건축 등을 배울 권리를 갖게 될 것이다.>나는>
박 래 부 논설위원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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