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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 송종의씨와 "특별한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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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 송종의씨와 "특별한 인연"

입력
2003.0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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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장관의 유력한 후보였던 송종의(宋宗義·사진) 전 법제처장이 장관직을 끝내 고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노무현 대통령과의 인연이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노 대통령측은 법제처장을 끝으로 시골에 내려가 밤농사를 짓고 있는 그의 소박함과 강직한 성품을 높이 사 삼고초려의 공을 들였지만 그는 끝내 고집을 꺾지 않았다는 후문이다.노 대통령이 재야운동가로 활동했던 5·6공 시절 검찰과 숱한 악연이 많았지만 그중 하나가 송 전 처장과의 인연이다. 1981년 부산의 운동권 학생 30여명이 좌경학습을 했다는 이유로 검거됐던 부림사건의 변론을 맡으면서 노 대통령은 '시국사범 단골 변호사'로 변신하고 이어 85년 부산 민주시민협의회 창립을 계기로 본격적인 재야운동가로 거듭난다. 이 때부터 노 대통령은 안기부 검찰 등 공안당국의 '눈엣가시'가 됐다.

송 전 처장과는 87년 2월7일 부산에서 열린 박종철 추모집회를 통해 처음 인연이 맺어졌다. 당시 부산지검은 노무현 변호사를 어떻게든 구속시키려고 하루에 3차례나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의 거부로 결국 성공시키지 못한 일이 있었다. 시위현장에서 붙들려온 노 변호사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당직 판사가 기각하자 검찰은 다른 부장판사에게 영장을 재청구했지만 이 마저 판사가 서류를 그대로 두고 퇴근하는 바람에 실패했다.

그러자 검찰은 또다른 3명의 부장판사 집을 일일이 방문, 영장발부를 요청하는 편법을 썼으나 번번히 거절 당해 결국 손을 들 수 밖에 없었다. 이때 부산지검 1차장으로 노 변호사의 구속영장청구서를 결재했던 장본인이 다름아닌 송 전 처장이다. 당시 부산지검장은 박희태(朴熺太) 한나라당 대표대행이었지만, 서울로 출장가는 바람에 송 전 처장이 대신 이 사건을 지휘했다. 하지만 노 변호사는 같은 해 9월 시위과정에서 숨진 대우조선 이석규씨 보상문제와 사체 부검에 관여했다고 결국 제3자 개입혐의로 구속되는 신세가 됐다.

노 대통령의 측근은 "노 대통령도 송 전 처장과의 이 같은 인연을 잘 알고 있다"면서 "이와 무관하게 송 전 처장에 대한 검사들의 존경심과 강직한 성품이 강점으로 꼽혀 유력하게 추천됐다"고 말했다.

/이진동기자 jayd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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