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를 놓아달라."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최근 사석에서 이광재(李光宰·39·사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비롯한 386 운동권 출신 참모들에게 했다는 말이다. 당시 참석자들은 이 말을 '모든 일에 관여하며 전횡하고 있다'는 질시를 받고 있는 이 실장을 향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노 대통령은 또 다른 자리에서는 "내가 386 출신 참모들의 얘기를 거의 전적으로 듣는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반문한 뒤 "실제로는 20%도 안된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이 길게는 15년 가까이 같이 지내온 386 참모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연세대 운동권 출신으로 1987년 수배를 피해 부산에서 위장취업을 했다가 노 대통령을 처음 만난 이 실장의 경우는 특히 그렇다. 이 무렵 노 대통령은 부림사건의 변호를 맡은 것을 계기로 막 민주화 운동에 투신한 때여서 이들은 자연스럽게 의기투합할 수 있었다. 이 실장은 노 대통령이 88년 13대 선거에서 국회의원이 됐을 때 비서로서 386 참모의 원조가 됐다.
노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한 뒤 곧바로 이 실장의 '월권과 전횡'에 대한 논란이 불거진 것도, 어려웠던 시절 노 대통령이 이 실장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실장은 교수 등 정책 그룹 뿐 아니라 기업인 등 후원자 그룹을 모으는 데에도 실력을 보였고, 각종 정책 개발과 선거 기획까지 모든 일에 손을 댔다. 이 실장은 조금 늦게 합류한 고려대 운동권 출신 안희정(安熙正·39)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전 비서실 정무팀장)과 함께 투톱을 이루었다.
이러한 관성이 노 대통령의 당선 뒤에도 이어진 흔적이 곳곳에서 눈에 띠면서 이 실장은 비판과 견제의 타깃이 됐다. 이 실장은 실제로 청와대 및 내각 인선 과정에서 후보를 발굴, 추천하는 일에 참여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또 청와대 비서실 직제개편 등 국정운영의 골격을 짜는데도 관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실장이 주도하게 될 국정상황실은 일상적인 정보 취합 뿐 아니라 대통령의 일정기획 업무까지 하게 돼 있어 권한과 위상이 높아졌다.
이 같은 사정을 모를 리가 없는 노 대통령이기에 "이제 나를 놓아달라"고 말한 것은 구구한 해석을 낳고 있다. 386 출신의 한 참모는 "과거엔 386 외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노 대통령에 대한 독점 현상이 생겼다"면서 "노 대통령의 말은 이제 그런 독점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모는 "이 실장이 일을 했다고 하더라도 실무적인 수준이었을 것"이라면서 "때문에 노 대통령의 말은 경고의 의미보다는 자중자애하라는 뜻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정치인 출신으로 비서실에 합류한 한 핵심 관계자는 "노 대통령의 말을 어떻게 해석할지는 이제 이 실장 등 386 출신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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