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선 게이트'에 연루돼 미국으로 도피했던 최성규(崔成奎·사진) 전 경찰청 특수수사과장(총경)이 25일(한국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미 수사당국에 의해 전격 검거됐다. 최 전 총경은 권력층의 밀항 종용 및 도피 방조 의혹의 중심에 서 있던 인물이어서 국내로 송환돼 검찰 수사가 재개될 경우 파장이 예상된다.최 전 총경은 미국 현지 시간으로 24일 오전 7시15분께 라브레아파크 아파트 인근 공원에서 산책을 하다가 LA경찰국 수사관과 연방수사관 등에 검거됐다. 최 전 총경은 LA 연방지방법원에서 인정신문을 받은 뒤 LA 메트로폴리탄 구치소에 구속 수감됐다.
미 수사당국은 한미 범죄인 인도협정에 따라 우리 정부의 요청을 받고 최 전 총경 행적을 추적해오다 최 전 총경이 지난해 12월 입국한 부인과 함께 현재의 아파트에 살고있는 사실을 확인, 지난 6일 법원으로부터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비호 의혹 드러날까
최 전 총경의 공식 혐의는 비리수사 무마 대가로 최규선(崔圭善·구속)씨를 통해 모병원 산하 벤처기업에서 1억2,000만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의 밀항 종용설 등 비호 의혹 규명이 더 큰 관심사다. 밀항 종용설은 최규선씨가 지난해 4월 영장실질심사에서 "최 전 총경이 4월12일 대책회의 자리에서 '청와대 회의결과 당신을 밀항시키기로 했으며 부산에 배를 준비해뒀다'는 말을 했다"고 주장하면서 터져나왔다. 당시 서울지검 특수2부는 이만영(李萬永) 청와대 비서관을 조사했으나 그가 "최 전 총경을 만났지만 최규선씨 등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고 부인, 수사를 더 진행하지 못했다. 그의 석연치 않은 도피 행각도 규명대상이다. 최 전 총경은 대책회의 참석 이틀 뒤인 지난해 4월14일 홍콩으로 달아나 4개국을 거쳐 미국에 입국하는 과정에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았다. 또 도피과정에서 경찰청 고위간부와 전화통화까지 한 것으로 밝혀져 의혹을 샀다. 그는 특히 미국 뉴욕 존 F 케네디 공항에서 특별출구로 빠져나가는 등 '배후세력'의 도움 없이는 실현 불가능한 행각을 보이기도 했다.
검찰 반응
검찰은 "수사 여부는 최 전 총경 송환 이후 논의할 사항"이라며 신중한 태도지만 '대통령 아들 보호를 위한 권력기관 총동원' 의혹이라는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결국 최 전 총경 비호의혹에 대한 수사에 착수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최 전 총경이 수개월이 걸리는 정식 인도재판 절차를 밟을 가능성이 높아 단기간내 수사재개는 어려울 전망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여권이 말소됐다 해도 비자 유효기간이 남아있다면 불법체류자로 추방되지 않는다"며 "최 전 총경이 인도재판에서 귀국에 동의한다 해도 최소한 수개월이 걸릴 전망"이라고 말했다.
/박진석기자 jseok@hk.co.kr
■ 검거 당시 최前총경
최성규 전 총경은 붙잡힐 당시 콧수염을 기르고 검은색 점퍼 안에 흰색 선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어 언뜻 보기에는 동남아인으로 착각할만큼 과거와 다른 모습이었다. 최 전총경은 수시로 변장을 하고 가명을 써가며 신분을 위장했으나 로스앤젤레스 경찰국(LAPD) 동양인 수사과의 한국계 론 김 경관의 집요한 추적 끝에 붙잡히고 말았다.
김 경관은 지난 6일 법원에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연방보안관들과 함께 신병 확보에 나서 24일 오전 7시15분 코리아타운에서 5∼6㎞ 떨어진 라브레아 파크 아파트단지 부근 공원에서 최 전 총경을 발견했다. 한인들이 많이 사는 LA 유일의 고층 아파트단지와 이웃하고 있지만 출근시간 때라 공원에는 산책객들이 별로 없는 상태였다. 검거 당시 최 전 총경은 "최성규가 아니라 윤종철"이라고 한동안 주장했지만 김 경관의 추궁에 낙담한 듯 신원을 시인했다.
김 경관은 "탐문 수사 중에 잡았다"며 "장시간 잠복한 끝에 검거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최 전 총경은 공원에서 검거된 후 연방보안관과 함께 연방지법 인근 구치소로 옮겨졌다"고 덧붙였다.
최 전 총경은 이날 오후 로스앤젤레스 연방지법 341호 법정에서 인정신문이 열릴 때는 줄곧 초조한 표정을 내비쳤다. 최 전 총경은 다른 피의자 10여명과 함께 앉아 부인 정모(51)씨 등 가족들과 보도진을 이따금씩 쳐다보기도 했다. 대기석에 앉은 최 전 총경을 묵묵히 지켜보던 정씨는 남편의 구금이 확정되고 수갑이 채워지자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한편 최 전 총경은 검거 전 이미 자진 귀국할 의사를 갖고 있었다고 가족들이 주장했다. 부인 정씨는 이날 법원 인정신문이 끝난 뒤 "남편은 도피생활을 해왔지만 한국 정부가 '한미범죄인인도협정'에 따라 송환을 요구했을 때 귀국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정씨는 또 "남편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생각한다" 며 "남편이 자진 귀국 의사를 굳히고 이미 주변 인사들과 충분한 상의를 했는데 귀국 전에 체포돼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LA미주본사=하천식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