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문제 해법을 둘러싼 이견으로 다른 나라 정상을 겨냥한 상대국 언론의 인신공격이 갈수록 신랄해지고 있다. 언론을 통한 간접공격을 넘어 주요 각료와 정치인들이 직접 나서기도 한다. 사담 후세인 때문에 수시로 얼굴을 맞대온 서방 7개국(G-7) 정상 중 상당수가 불편한 관계가 됐다. 유럽 언론에 의해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전쟁광으로 묘사된 지 오래고, 부시의 이라크 정책을 지지해 온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부시의 애완견이 됐다. 이에 뒤질세라 미국 언론은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와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때리기에 바쁘다.■ 미국과 유럽의 대립은 급기야 같은 유럽인 영국과 프랑스간의 싸움으로 번졌다. 영국의 최대 대중지 '더 선'은 시라크를 '벌레'라고 비하한데 이어, 공정성을 자랑하는 국영 BBC 방송은 그를 '3분 맨(the three-minute man)'이라고 인신공격 했다. 시라크가 이끌고 있는 프랑스 여당의 여직원들이 그와의 신속한 성 관계를 빗대어 그렇게 부르고 있는 것을 인용했다. 또 시라크가 말로만 미국에 맞서고 있을 뿐, 실제로는 미국을 매우 동경하고 있으며 대학시절에는 미국의 하버드 대학에서 여름을 보내며 식당직원으로 일했다고 꼬집었다. 프랑스 정치인과 언론이 블레어를 미국의 하수인이자 부시의 애완견이라고 공공연하게 부른데 대한 앙갚음이다.
■ 독일의 그멜린 법무장관이 부시 대통령을 히틀러에 비유했다가 해임됐고,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독일과 프랑스를 시대에 뒤 떨어진 '낡은 유럽'이라고 말했다가 구설수에 올랐다. 럼스펠드는 독일의 항의가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서도 보란 듯이 '독일은 리비아 및 쿠바와 같은 고집불통 국가'라고 거침없이 말했다. 미국과 독일의 관계는 2차 세계대전 후 최악이다.
■ 개인과 마찬가지로 국가와 정상간의 관계도 말썽꾸러기 한명이 판을 흐려놓는 경우가 많다. 이라크 전쟁에 대한 반전무드가 거세지고, 미국의 이라크 문제에 대한 결정이 늦어질수록 정상간의 반목과 상대국 정상에 대한 인신공격은 심해질 것이다. 후세인 때문에 틀어진 정상들간의 관계는 복원되려면 한참 걸릴 것 같다.
/이병규 논설위원veroic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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