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사립학교에 '수감'된 아이들의 넘치는 열정과 그들의 안식처가 되는 스승이 나오는 '죽은 시인의 사회', 숨겨진 재능을 찾아주는 스승이 나오는 '파인딩 포레스터'가 있었다. 더 이상 사립학교를 배경으로 제자와 스승의 관계를 그린 영화가 재미있을까. 적어도 '엠퍼러스 클럽'(The Emperor's Club)을 보면 그렇다는 답이 절로 나온다. 그리스 로마사를 가르치는 헌더트 선생(케빈 클라인)은 첫 수업에서는 반드시 아이들에게 슈트룩 나훈테(BC 1158)의 기념비를 읽힌다. 앗시리아 지역 안샴의 왕이었던 나훈테는 그러나 역사서에는 나오지 않는 인물. 대체 승자의 기록인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왕은 어떤 존재가치가 있을까.'엠퍼러스 클럽'은 태어날 때부터 성공을 예약, 기고만장한 '시저' 스타일의 소년과 결국 두 번이나 제자에게 농락당한 무명 교사의 25년에 걸친 '아름답지 못한' 인연을 보여준다.헌더트가 재직 중인 명문 사립고에 상원의원의 아들 세드윅 벨(조엘 그레치)이 전학 왔을 때, 그리고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원칙이 아니라 결과"라며 '꼬마 기성세대' 같은 이야기를 할 때도 영화는 자꾸 '죽은 시인의 사회'를 그리워하게 만든다. 지독히 공부를 하지 않는 벨의 아버지를 찾아갔다 "인성을 만들려 까불지 말고 지식이나 가르치라"는 핀잔을 듣는 교사의 모습도 예상치 못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꽤 양심적인 헌더트가 성적을 조작하는 순간부터 영화는 꽤 흥미진진한 드라마로서의 격을 갖춘다. 헌더트 선생은 아버지 때문에 많이 상처를 받았을 벨의 의욕을 북돋워 주기 위해 벨에게 '줄리어스 시저 경연'에 출전하도록 권하고, 벨은 처음으로 공부에 취미를 붙인다. 벨의 의욕을 꺾지 않기 위해 헌더트는 성적을 3등으로 올려서 결승에 진출시킨다. 그러나 벨은 속임수를 써서 헌더트를 실망시켰고, 두 사람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나고 만다. 그러나 25년 후, 아버지 덕으로 승승장구한 벨(에밀 허쉬)은 거액의 기부를 조건으로 경연대회를 다시 열자고 제안, 헌더트는 착찹한 마음으로 벨 개인 소유의 컨트리 클럽으로 향한다.
'슈트룩 나훈테'라는 역사책에 나오지 않는 인물은 영화의 중요한 키워드다. 그 이름은 역사에 남는 인물이 되기 위해 속임수와 기만을 일삼는 벨의 발목을 끝까지 잡아 채는 '문제'가 되며, 가르치는 재주는 있어도 돈줄을 만드는 재간이 없었던 헌더트가 후배에게 교장 자리를 빼앗기고 초라한 만년을 보내는 모습도 치적을 남기지 못하고 역사에서 사라진 슈트룩 나훈테를 떠올리게 한다.
"벨은 내 교육의 실패 사례지만 여전히 교육의 힘을 믿는다"는 헌더트의 말은 좀 터무니없게 들린다. 교육이 결코 인성을 바꿀 수 없다는 회의론, 혹은 성공한 이들의 '모럴 해저드'가 뼛속 깊이 뿌리박혀 있음을 증명한 영화가 교육의 힘을 강조하는 것은 관객 영합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한 숨 돌리고 생각해 보면 역사에 남을 인물의 허물을 제대로 바라보는 것은 이름을 남기지 못한 초라한 이들의 예리한 눈길 아닐까. 감독 마이클 호프만. 3월7일 개봉. 전체 관람가.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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