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원 이광수는 친일로 훼절하기 전 역사소설을 열심히 썼다. 그 중 각별한 정성을 기울인 작품이 '이순신'이다. 소설의 대미는 '조선 5백년의 처음이요, 나중인 큰 사람, 이순신의 슬픈 생애를 그리는 붓을 놓는다'고 비장하게 끝난다. 이어 "나는 충무공이란 말을 싫어한다. 그것은 왕과 그 밑의 썩은 무리들이 준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견해를 밝힌 것도 흥미롭다. 그는 다른 글에서 세종대왕은 조선문화의 집대성자이지만, 이순신을 숭앙하는 것은 자기희생적, 초훼예적(超毁譽的) 자세와 끝없는 충의 때문이라고 말한다. 작가가 작품과 반대의 길로 간 것은 비극이다.■ 애국적 위인들 동상이 서울에 집중돼 있는 것도 문제이긴 하지만, 그 중 업적에 걸맞게 우뚝한 것이 충무공 이순신 장군상이다. 고(故) 김세중이 제작한 이 동상은 당당하고 위엄 있는 풍채와 왜적을 무찌르는 우렁찬 기운으로 광화문 일대를 압도하는 듯하다. 장군의 최후처럼 그 조각에는 장엄한 비극미가 감돌고 있다. 세계 주요도시를 가면 그 국민이 기리는 다양한 위인상이 방문객을 맞지만, 충무공상 만큼 강렬한 인상을 풍기는 동상도 흔치 않다.
■ 장군이 오른 손으로 칼을 짚고 있어서 패장상이니,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과 흡사하니 등 말도 있었지만, 충무공 동상은 국민의 절대적인 아낌을 받아 왔다. 동상 물 청소하는 것만으로도 뉴스가 되어 여러 번 사진이 보도되었고, 시위 효과를 높이려는 사람들이 몇 번이나 불법으로 기어오르는 표적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서울시가 세종로를 확대하기 위해 이 동상을 이전할 계획이라니 충격적이다. 세종로의 중앙분리대 가로수와 충무공 동상을 옮기고 보도를 넓혀, 필요에 따라 시민광장으로 활용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 도시를 시민생활에 맞게 변화시키는 일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지난해 월드컵 거리응원 이후, 서울시가 너무 흥분해 있는 듯하다. 청계천 복원은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공사라 하더라도, 시청앞 광장조성과 세종로 확대 등은 좀더 세심하게 고려할 요소가 많다. 일부의 즉흥적 발상만 따르다 보면 포퓰리즘으로 흐르기 쉽다. 역사적 의미가 크고 미학적 완성도가 높은 충무공 동상을 함부로 옮겨서는 안 된다. 지금 자리에 있거나, 혹 옮긴다면 훨씬 더 좋은 위치로 가야 한다.
/박래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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