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년간 대한민국 대통령이었던 김대중씨가 오늘부터 전직 대통령이 된다. 5년 전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그는 30년 가까이 한국 사회의 지배집단이 고른 속죄양이었다. 여럿에게 증오가 확산되면 그 증오는 응집력을 지닐 수가 없으므로 한 사람이 선택될 수밖에 없었는데 그가 김대중이었고, 그 하나는 속죄양이 되기 위한 여러 표지를 지니고 있어야 했는데 바로 그가 그랬다. 그는 무엇보다도 전라도 사람이었고, '전라도 사람답게' 마키아벨리스트였으며, '수상쩍은' 이념적 과거를 지니고 있었다.권력 핵심부에 의한 수장 선고, 교수형 선고, 추방 선고만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를 배심원으로 한 종교재판에서의 유죄판결도 제지할 수 없었던 그의 불가사의한 재기는 권력에 대한 그의 집착의 증거였을 뿐만 아니라, 죽여도 죽여도 죽지 않는 '악마성'의 표지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만인 대 일인의 싸움의 한 축이 되었고, 그 덕분에 공동체의 주류는 총화단결할 수 있었다. 그들은 김대중을 미워하며 서로의 미움을 떨어냈고, 죄의 사함을 받았고,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그러나 그는 주류 사회의 배척을 이겨내고 5년 전 오늘 청와대에 입주했다. 김대중 시대 5년이 앞으로 어떤 평가를 받을지 예단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닐 것이다. 확실한 것은, 그가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처음으로 당대의 시류를 넘어 역사를 응시할 줄 알았던 지도자라는 사실이다. 그가 일관되게 추진한 민족 화해 정책은 역사와의 창조적 대결이 낳은 열매다. 그의 임기 말을 만신창이로 만든 부패 스캔들은 전임자들 시절의 그것들처럼 세월의 더께로 이내 희미해지겠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닦기 시작한 민족 화해의 길은 시간이 지날수록 넓어지며 김대중 시대의 평균 점수를 크게 높일 것이다.
고 종 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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