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회 아카데미상에 작품상 등 9개 부문 후보에 오른 '디 아워스'의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가 배우 니콜 키드먼(사진 왼쪽)이라고 생각하는 관객은 많지 않을 것이다. 창백하도록 아름다운 키드먼은 울프의 모습을 닮기 위해 말처럼 긴 코를 하고 나와 열연,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그는 16일 폐막한 베를린영화제에서는 함께 출연한 줄리안 무어, 메릴 스트립과 여우주연상을 공동 수상했다.키드먼은 못 생긴 코 덕택을 톡톡히 본 셈인데, 과거에도 기형적 코를 하고 나와 아카데미상을 받거나 후보에 오른 배우들이 여럿 있었다. 엄청나게 큰 코를 단 채 맹렬한 연기를 해 아카데미상을 받은 첫 배우는 호세 퍼러. 그는 1950년 '시라노 드 벨주락'에서 코주부 시인이자, 검객 시라노로 나와 상을 받았다. 40년 후 프랑스 배우 제라르 드파르디유가 원래 큰 자기 코에 살을 더 붙인 뒤 역시 시라노로 나와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비정상적으로 큰 코를 하고 클래식 작품에 나와 아카데미 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또 다른 배우는 로렌스 올리비에. 셰익스피어 원작 '리처드 3세'(1955)에서 왕좌를 차지하려고 닥치는 대로 살인하는 곱추 코주부로 나와 소름끼치는 연기를 보여줬다. 웨스턴 '캣 밸루'(1965)에서 끈으로 양철 코를 얼굴에 맨 채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쏴 죽이는 무법자로 나온 리 마빈도 코 때문에 주연상을 받은 배우다. 그는 싸우다가 코를 물어 뜯겨 양철 코를 달고 다녔는데, 영화에서 무법자의 주정뱅이 쌍둥이 형제로 1인 2역을 했다. 당시 저물어 가던 마빈의 배우 인생을 되살려 준 작품이다.
'차이나타운'(1974)의 잭 니컬슨의 코도 영화 내내 자기 존재를 과시했다. LA의 사립탐정 제이크 기티스로 나온 니컬슨은 깡패인 로만 폴란스키의 잭나이프에 코가 찢겨 코를 온통 붕대와 반창고로 감고 다녔다. 니컬슨은 이 역으로 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코 뿐 아니라 온 몸을 비대하게 만들어 주연상을 받은 연기파가 로버트 드니로. 실화인 '성난 황소'(1980)에서 클럽 코미디언으로 전락한 왕년의 권투챔피언 라 모타 역을 위해 이탈리안 소시지 같은 코로 분장했다.
연기파 알 파치노는 '딕 트레이시'(1990)에서 커다란 갈구리 코를 한 광적인 코믹 갱스터로 나와 조연상 후보에 올랐던 배우. 거대하고 괴상하게 생긴 인조 코가 아닌데도 얼굴에서 코 밖에 안 보이는 명배우는 칼 말덴이다. 그의 코는 마치 거대한 구근처럼 생겼는데 말덴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951)로 아카데미 조연상을 받았다.
/LA영화비평가협회원·한국일보 미주본사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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