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남자'에서 서원을 윤락가에 넘겼던 중년 사내, 'YMCA 야구단'에서 유독 커다란 방망이를 휘두르던 야구선수 마성한, '달마야 놀자'의 조폭, '박하사탕'에서 설경구 뒤통수를 치는 동업자….이대연(39·사진)은 TV에서는 신인이지만 영화와 연극판에서는 '소리 없이 강한' 연기자다. '비언소' '날 보러 와요' '거기' 등의 굵직한 연극들에서 닦은 연기 내공을 최근 MBC 드라마 '눈사람'(연출 이창순)에서도 펼치고 있다. 한필승(조재현)의 동료 형사 역이다. 그는 최근 러시아 연출가가 만들고 윤주상 등 명배우들이 총집결한 뷔히너의 연극 '보이체크' 에도 출연했다.
"욕심만큼이나 아쉬움이 많이 남네요." 심약한 병사 보이체크를 괴롭히는 중대장으로, 허풍과 악의 그리고 술로 자신의 심약함을 숨기는 악역을 연기했다. 악역이 잘 어울린다고 했다니 만족스럽다는 듯 턱을 만지며 웃는다. "'저건 정말 같다'는 말이 나올 수 있으면 제일 좋은 거죠."
'눈사람'에선 그를 비롯한 연기파 조연들이 대거 형사로 나온다. "털털한 옆집 아저씨 같은 역을 많이 했어요. 연극이 제일 편하지만 상황에 따라서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TV 드라마는 처음이라 부담이 됐는데 형사반으로 출연하는 배우가 모두 아는 사람이에요. 명계남 형이 학교 선배고, 조재현과 김윤태는 '나쁜 남자'에서 같이 했죠." 그는 '눈사람'의 사실감 넘치는 '대사발' 때문에 호응을 받는 것 같다고 했다. 이들 연기파 형사들은 큰 역할은 아니지만 사실적인 대사로 분위기를 북돋운다.
연세대 극예술연구회에서 연극을 시작, 89년부터 극단 신시 연우무대 차이무 등에서 연극을 했다. "김갑수 선배에 반해서 극단 신시에 들어갔는데, 제 우상이었죠. 김 선배 흉내를 내봤지만 난 너무 평범하더라구요. 어느 선배 말이 술이 없었으면 제가 무대로 들어오지 않았을 거라고 그러대요. 연극반 출신 중에 내가 배우가 될 줄 알았던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러나 평범함 속의 비범함은 곧 알려졌다. 96년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 신인상을 받은 이후 영화판으로 무대를 넓혔다.
주연을 맡았던 영화 '낙타(들)'(감독 박기용)을 보면 그의 '비범한 평범'이 무엇인지를 잘 알 수 있다. 40대에 들어선 남녀의 하룻밤 일탈을 담은 흑백 영화로 시나리오도 없이 다큐멘터리처럼 찍은 영화다. 일상의 단면을 베어낸 듯, 그의 대사는 전혀 대사 같지 않고, 연기는 연기가 아니라 삶의 일부처럼 보인다. "'저런 사람이 있구나 무릎 탁 치게 하는' 연기를 하고 싶어 계속 연기를 하는 것 같다"는 그의 말대로, 그의 연기에선 사람이 북적거리는 저자거리 냄새가 난다.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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