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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쓴소리]문화의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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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쓴소리]문화의 복수

입력
2003.0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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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 분야의 해묵은 논쟁 메뉴 가운데 하나는 사회구조와 문화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구조와 문화 가운데 어떤 게 더 중요한가?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다 둘 가운데 어느 한쪽에 치우쳐 있기 마련이지만, 사실 이건 우문(愚問)일 수 있다. 오래 지속된 구조가 문화를 만들겠지만,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문화는 역으로 구조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지금 우리 사회는 '문화의 복수(復讐)'라고 부를 수 있는 상황에 처해 있다. 개혁의 최대 장벽이 바로 이 문화의 복수다. 우리는 정치적인 민주화는 이루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화적인 민주화까지 이룬 건 아니다.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형성된 삶의 문화는 그대로 살아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그런 점에 주목해 '일상적 파시즘'이니 '우리 안의 폭력'이니 하는 개념을 제시했지만, 이들은 구조를 완전히 외면하고 오직 문화에 몰두해 보통사람들만을 개혁 대상으로 삼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구조는 하루 아침에 사라질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정권 차원의 민주화가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정당과 관료 조직의 오랜 구조까지 민주화가 되었다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다. 재벌과 언론 역시 과거의 구조를 그대로 온존시키고 있다. 따라서 문화 개혁은 구조 개혁을 전제로 하거나 수반해야지 단독으로 추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점을 분명히 하면서 '문화의 복수'가 모든 개혁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 현실을 살펴보자.

정치개혁은 국민의 정당 참여가 완전하게 이루어질 때에 완결될 수 있다. 정당 내부에서 그 어떤 개혁적인 조처들을 취한다 하더라도 국민 의식의 심연에 남아 있는 정치에 대한 냉소와 혐오까지 치유하기는 어렵다.

시민운동도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라고 비판하지만 그렇게 비판하는 사람조차 어느 시민운동단체에도 가입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우리에게 참여와 기부의 문화가 없는 건 지난 수십년간 지속돼 온 권위주의 통치 구조의 산물인데, 이걸 하루 아침에 바꾸기는 어렵다.

언론은 어떤가? 언론 관련 법을 어떻게 바꾸더라도 우리 국민의 기존 신문구독 관행에 변화가 일지 않는 한 언론개혁은 기대하기 어렵다. 무조건 1등이라고 하면 우우 몰려 다니는 '주류 콤플렉스'는 불행한 역사를 겪어온 사람들이 자신의 안전과 성장을 꾀하기 위한 불가피한 처세술이었겠지만, 이젠 역으로 세상의 발전을 가로막는 큰 장애가 되고 있다.

부정부패 연고주의 학벌주의 안전 불감증 등도 다수 국민이 중독돼 있는 문화적 현상이다. 그걸 낳게 했던 구조에 변화가 생겨도 그 문화는 이제 독자적인 생명력을 갖고 역으로 구조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는 열심히 개혁을 외쳐왔지만 이 '문화의 복수'에 대한 대응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걸 성찰해야 할 것이다.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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