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소기업 정보화 수준은 60점." 지난해 우리나라를 방문한 세계적 경영학자 톰 피터스는 "한국 중소기업의 경영정보화는 미국에 비해 황폐한 지경"이라며 이처럼 인색한 점수를 줬다.'정보통신강국'이라는 명성이 무색할 만큼 낙후된 중기 정보화에 대한 우려가 높다. 이에따라 효율적이지 못한 정부의 중기 정보화 지원 정책에 대한 비판도 거세지고 있다. 관련 부처들의 손발 안 맞는 정책 남발이 이어지면서 정작 '인력난'과 '주먹구구식 경영'이라는 중기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할 '경영 정보화'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기 경영 정보화 현주소
경기 안산에서 소형 변압기를 생산하는 최영호(52) 사장은 올 초 뼈아픈 경험을 했다. 회계를 총괄했던 경리부 직원 2명의 연이은 퇴사로 자금 및 자재 관리에 구멍이 생기는 바람에 거의 열흘간이나 공장 가동률이 절반으로 떨어진 것. 전사적 자원관리(ERP) 시스템으로 모든 경영 관리가 전산화된 업체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최 사장은 "경영 정보화의 필요성은 알면서도 빠듯한 운영 자금과 정보화 인력의 부족으로 망설이기만 했던 것이 후회스러웠다"고 말했다.
지난해 중소기업정보화경영원(KIMI)이 국내 중소제조업체 1,503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중기정보화지수'는 평균 48점, 대기업 평균의 70% 수준에 그쳤다. 그나마 사내통신망(LAN)과 홈페이지를 갖춘 기업이 대부분으로 ERP나 고객관계관리(CRM), 자동공정관리 등 경영 정보화를 통해 인력 절감과 생산성 향상을 이룩한 기업은 전체의 10%에 불과했다.
정보화 정책 실효성 의문
정부가 2001년부터 추진해온 각종 '정보화 지원사업'에 대한 문제제기가 잇따르고 있다. 매년 엄청난 예산을 들여놓고도 실질적인 중기 경영 정보화에는 별 도움이 못됐다는 지적이다. 현재 산자부, 정통부, 중기청 등이 각각 '중기 정보기술(IT)화 지원사업'에 535억원, '소기업 네트워크화 사업'에 연간 927억원, '중기정보화 혁신컨소시엄' 에 295억원 등 무려 2,000억원의 예산을 들여 각종 정보화 지원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중기청의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각종 정보화 지원을 받은 업체 3만4,438개 중 경영 정보화에 해당되는 ERP 도입이나 생산설비 정보화 지원을 받은 경우는 2,842건으로 전체의 10% 미만에 불과했다. 또 지난달 기협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이들 지원 대상기업 중 절반인 82%의 기업이 지원 효과를 '보통이하'로 평가하는 등, 정보화 지원 정책의 효과는 '낙제점'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세심한 정책적 배려 시급
중기 경영정보화 정책이 '찬밥'대우를 받는 것은 관련 부처들마다 제각각으로 '백화점식 정책'을 벌이고 있고, 정책 일관성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선 실효성 있는 정책 수립을 위해 경영 정보화에 문외한인 중기들도 믿고 따를 수 있는 '중기 정보화 가이드'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실제 중기의 38% 가량이 '종합 안내 시스템의 부족'을 정부 지원 정책의 문제로 꼽았다. 업계에서는 "지원 대상 기업의 업종과 규모에 따라 차별화 된 지원책을 개발, 이를 종합적으로 안내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현재 정부 주도하의 중기 정보화 사업을 민간중심으로 전환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대기업이 중소 협력업체의 정보화를 지원토록 하고 정부는 정보화 저해요인 해소와 투자 위험도를 낮추기 위한 각종 지원에 주력하자는 것이다. KIMI 관계자는 "경영 정보화 투자액에 대한 세액공제 등 중기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제도적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정철환기자 ploma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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