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자정 무렵에 방송하는 KBS 2TV '폭소클럽'을 보다 보면 "안녕하세요. 사물흉내 개그의 서남용입니다. 제가 긴장을 많이 해서 여기 계신 분들을 형, 누나로 생각하고 편하게 해보겠습니다"며 자신을 소개하는 그를 만날 수 있다."좌변기에 휴지를 넣고 물을 내리면 이렇습니다. (자신을 가리키며) 휴지. 슈우욱∼ 슈우욱∼" 처음에는 저게 뭐냐 싶다가도 소용돌이 속에 말려 들어가는 휴지를 흉내내기 위해 얼굴 근육과 온몸을 비틀어대는 서남용(27)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웃음이 저절로 입가에 밴다.
삐쩍 마른 몸매에 큰 키, 그리고 덥수룩한 머리 위에 얹어 놓은 머리띠. 보기만 해도 우습다. 그런 그가 "뽀∼너스, 여러분,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여러분, 이것은 무엇일까요?"라며 도저히 흉내낼 수 없을 것 같은 사물을 하나 둘 몸으로 시연해내면 방청객에서는 폭소가 터져 나온다. 미역, 도토리묵, 낙타, 타이어, 해바라기, 스프링쿨러, 자석, 곰팡이, 무좀, 연필깎이, 팽이, 방패연, 맷돌, 멸치액젓, 통조림, 중앙선…. 그동안 서남용이 보여준 목록을 하나씩 세다 보면 그 기발한 발상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스탠딩 코미디는 말을 위주로 해야 하는데, 전 몸으로 하는 개그라 걱정을 많이 했어요. 처음에는 낯설어 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이제는 재미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아 다행입니다." 겸손을 떨지만 서남용은 최근 사물흉내 개그로 시청자의 인기를 얻고 있는 기대주다. 성대모사가 판을 치는 개그계에서, 그리고 말의 성찬(盛饌)으로 채워지는 정통 스탠딩 코미디 프로그램인 '폭소클럽'에서 사물흉내 개그라니 더욱 눈길을 끈다.
방송에서 잔뜩 긴장한 얼굴로 나오는 서남용은 실제로도 말이 느리고,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이었다. "주위에서 아무도 제가 개그맨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평소에 말을 재미나게 많이 하거나 개인기가 있는 편이 아니었거든요. 개그맨 공채시험도 몰래 봤어요. 어느날 '폭소클럽'에서 저를 본 어머니가 '방송에서 너 나오데' 하는데도 아니라고 잡아뗐어요. 창피해서."
내성적인 성격의 서남용은 군에서 제대한 뒤 서너 번 방송사 개그맨 공채 시험을 치렀으나, 보기 좋게 모두 미끄러졌다. 부산에서 태어나 방송국 근처에도 못 가본 그였다. "면접관 앞에서 고개를 드니 머리 속이 하얘지면서 아무 생각도 안 나더군요. 어, 어 하다 보니 면접관이 다음 하는데, 결국 아무것도 못하고 나왔지요."
그러고 난 뒤 복학도 하지 않고 연기 연습에 매달렸다. 지금도 특기란에 '공상(空想)'이라고 적을 정도로 엉뚱한 상상을 즐겼던 그는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건 코미디다.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2년간 낮에는 공사장 인부, 용역업체 청소원, 도매시장 점원으로 일하고 밤에는 거울을 들여다보며 표정 연기를 가다듬었다. 대형 거울이 있는 지하철 화장실도 연습 장소였다. "한밤 중에 방에서 궁시렁거리니까 아버지가 오해를 하셨던 모양이에요. 다음날 어머니가 '남용아 내일 시간 있으면 병원에 가보자' 하시더군요."
서남용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은 지난해 10월. 공채시험 탈락자에게 KBS 위성채널의 코미디 프로그램 '한반도 유머총집합' 출연 기회를 준다는 편지가 왔다. 다음날 새벽 '일자리 구하러 간다'며 가방 하나 달랑 들고 무작정 상경했다. '한반도 유머총집합'의 펀 스테이지 코너에서 선보인 사물흉내 개그가 '폭소클럽' 작가의 눈에 띄면서 지상파 방송무대에 서게 됐다.
"가끔 지나가는 사람들이 저를 보고 '어, 사물흉내 개그네' '뽀∼너스'하면서 알아봐 주실 땐 정말 기분이 좋더라구요." 처음에는 썰렁하다며 비난하는 글이 게시판에 올라 왔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두터운 마니아 층을 만들고 있다. 지난해 다음 카페에 생긴 팬 클럽의 회원수가 이미 1,200명을 넘어섰다. 그는 지금 서강대 인근 옥탑방에서 자취하는 사촌동생에 얹혀 살고 있다. 회당 출연료 14만원.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수입이지만 서남용은 즐겁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그것이 바로 뽀∼너스지요."
/김영화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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