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정부에서 1년6개월간 감사원장으로 일했던 한승헌 변호사가 정부에서 봉직했던 경험을 되살려 신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당부의 글을 본지에 보내왔다. /편집자주
오늘 노무현(盧武鉉) 정부의 역사적인 첫 아침에 나는 1987년 어느 가을날 부산의 한 경찰서 유치장이 생각난다. 그때 노무현 변호사는 거제도 대우조선 분규와 관련하여 경찰에 구속된 몸이었고, 서울의 민변 소속 변호사 몇명이 원정 접견을 갔던 것이다. 그때 수척한 모습으로 접견장에 나온 그 노 변호사가 4반세기 만에 이 나라의 대통령에 취임한다. 세월의 흐름과 세상의 변화를 실감하는 가운데 역사의 전진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70년대 이후의 민주화세력이 정치권력의 핵심부에 진입했다는 사실은 여러 언론에서 말하듯 사회의 주류와 주역의 교체라는 엄청난 의미를 갖는다. 노 대통령은 주변적인 소수세력이 집권하도록 다수 국민이 동의한 이유를 제대로 판독하여 거기에 담긴 국민의 염원과 기대를 충족시켜 주는 일이 지고지선(至高至善)의 과제임을 명심해야 한다.
새 정부는 무엇보다도 우리 삶의 터전인 한반도의 평화를 지켜내야 한다. 미국의 호전적 일방주의와 북한 핵 문제의 맞대응 속에서 우리는 지금 매우 난처한 입장에 놓여 있다. 그러나 그 무엇이든 간에 한반도의 평화에 위협이 되는 일은 결단코 반대해야 한다. 미국의 전쟁정책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을 무모한 항명이라도 되는 듯이 겁을 주는 언론도 있지만, 우리의 생존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자주마저 놓칠 수야 없지 않은가. 남북간의 교류·협력도 동족간의 평화·공존을 위함인즉, 이에 장애가 되는 모든 요소를 경계하고 제거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만일 이 땅에서 평화가 무너지고 전쟁에 휩쓸린다면 경제도 정치도, 우리 겨레의 목숨과 역사도 모두 파괴되고 만다.
이른바 국민통합 내지 사회통합에 관해서도 각별한 주문을 해야겠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오랜 고질이라 할 지역간의 갈등, 정치적 입장이나 경제적 이해관계의 상충에 따른 갈등, 계층간·세대간의 갈등 따위가 남아 있다. 대선을 치르면서 그 도랑이 더욱 깊어졌는가 하면, 앞으로의 개혁단계에서 한층 더 증세가 심해질 가능성도 있다. 만인을 모두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절대다수가 수긍할 만한 최대공약수를 정책화함으로써 차별과 소외 그리고 박탈감을 극소화시키는데 힘써야 한다.
올바르고 강력한 법치주의의 확립이 또한 긴요하다. 누구를 비호하거나 어느 세력의 저항에 밀려서 법치가 주춤거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법의 적용·집행 이전에 국회의 입법작용이 정상화되도록 입법부 내지 정치권의 변혁을 이끌어내야 한다. 감정적이고 소모적인 정쟁에 떠밀리는 국회의 탈선이나 직무유기를 종식시키는 것이 선결문제다.
오늘 닻을 올리는 새 정부는 젊음, 파격, 개혁지향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우선, 젊음이 주는 신선함과 역동성은 큰 자산이다. 그러나 연륜과 경험의 낮음에서 오는 아쉬움도 유의해야 한다. 차별성 부각을 위한 조급한 과속도 조심할 일이다. 파격 또한 그러하다. 한 사회의 틀을 급작스레 깰 때일수록 국민의 동의 내지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 국민의 의식과 유리된 독주는 자칫 객차를 떼어놓은 채 혼자 달리는 기관차가 되기 쉽다.
엊그제 한 일간지의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지금 국민 대다수(84%)는 노무현 정부가 국정운영을 잘해줄 것으로 믿고 있다. 무리한 개혁추진을 걱정하는 의견도 있지만, 무리가 따르지 않는 개혁이 어디 있겠는가. 그것이 다수 유권자에 의하여 납득과 공감이 가는 무리라면 소신껏 밀고나가야만 개혁의 결실을 거둘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지난 정권의 명암에서 많은 것을 깨닫고 배우기를 바란다. '선과 악이 모두 나의 스승'(善惡皆吾師:논어)이란 말은 디지털·인터넷시대에도 신봉해야할 불멸의 잠언이다.
한 승 헌 변호사·前감사원장
● 재계
재계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에게 자유시장 경제질서를 존중하는 경제정책과 함께 규제완화와 노동유연성 제고 등을 통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줄 것을 주문했다. 재계 관계자들은 최근 최태원(崔泰源) SK(주) 회장의 구속 등 재계에 불어 닥친 검찰수사를 의식한 듯 정부에 대한 적극 협력을 강조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24일 "새 대통령은 국민화합과 참여를 통해 활력이 넘치는 국가를 건설하고 법치주의 확립을 통해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며 "정부와 경제계가 협력해 우리나라를 동북아 경제허브로 육성하고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열어가자"고 제안했다.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무역협회는 "시장경제 질서를 존중하고 산업경쟁력을 강화해 동북아중심 국가 건설을 위한 정부와 재계간에 긴밀한 파트너십이 형성되길 기대한다"며 CEO형 대통령을 주문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규제 일몰제 활성화, 규제영향 평가 상시화 등으로 기업 규제를 획기적으로 완화해야 한다"면서 현행 노동법의 개정을 요청했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는 "새 정부의 국정 목표인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 사회'달성은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 육성을 통해 지속적 경제성장, 고용창출, 지역균형발전을 일궈냄으로써 가능하다"며 외국인산업연수생 규모 확대와 중소기업 지원제도의 통합 등을 제의했다.
삼성그룹은 "새 대통령의 깨끗하고 젊은 리더십으로 국민 에너지를 총 집결시켜 동서화합과 남북통일을 이루고 신구세대 및 보혁갈등을 해소하는 통합의 정치를 펼쳐달라"고 말했다. LG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은 "투명하고 공정한 경제시스템을 정착시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 주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권혁범기자 hbkwon@hk.co.kr
● 시민·사회단체
시민사회단체들은 노무현(盧武鉉)대통령에게 지속적인 개혁과 함께 국민의 의견을 폭넓게 반영할 것을 당부했다.
참여연대 이태호(李泰鎬) 정책실장은 "소수정권이라는 점을 지나치게 의식해 개혁에 미진한 부분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과감한 개혁을 추진해야하며 특히 권력형 비리를 근절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안진석(安珍石) 정책부장 역시 "개혁이미지가 당선의 결정적인 기반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며 "임기응변식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원리에 충실한 개혁이 추진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실련 신철영(申澈永) 사무총장은 "노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은 국민의 요구까지 폭넓게 수용할 것"을 당부하고 "재벌개혁도 궁극적으로 체질강화를 목표로 해야 하며 다른 의도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계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개혁적 대통령이 되길 주문했다. 민주노총은 "약자보호, 재벌개혁 등 사회통합 관련 공약을 지켜 빈부격차를 줄이는 정책과 남북화해정책을 흔들림 없이 펼쳐나가달라"며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통해 사회통합을 앞당기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국노총은 "가진 자 중심 정책에서 탈피해 정치개혁, 재벌개혁 등 개혁에 성공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길 바란다"며 "노동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복지 향상 및 제도 개선에 힘써달라"고 당부했다.
교육계는 학교민주화와 안정적 교육개혁을 주문했다. 전교조 송원재(宋源宰) 대변인은 " 교육 시장화정책으로 초래된 갈등과 혼란이 치유되고, 학교민주화가 더 진전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교총 황석근 대변인은 "교원들이 개혁의 대상이 아닌 주체가 되고, 여론몰이식 결정이 아닌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교육개혁을 추진해달라"고 당부했다.
서주원(徐注源)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그동안 성장만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면서 다른 중요한 부분이 무시되고 간과돼왔다"며 "성장위주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환경 마인드를 비롯한 다양한 시각을 통합해 국가 정책을 시행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한변협 박재승(朴在承) 신임 회장은 "한국의 법치주의는 권력자에 의해 훼손되고 형평성을 잃은 경향이 있다"며 "대통령은 국민이 법의 형평성을 믿고 신뢰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민변 김선수(金善洙) 사무총장도 "반민주주의 악법들을 말끔히 청산하는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며 "임기를 마칠 때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 받는 첫 법조계 출신 대통령이 돼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양은경기자 key@hk.co.kr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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