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정부의 권력이 과연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을까. '새로운 권력'은 과거 제왕적 행태를 보여온 대통령의 독주에서 탈피, 권력을 야당과 국회, 총리와 행정부, 사법부, 시민사회 등으로 적절히 분산시키는 것을 핵심 요소로 한다.그러기 위해 권력의 상당부분을 내놓아야 할 노 대통령은 여당 총재가 아닌 평당원으로서 당정분리를 실천에 옮기고 있는 것으로서 새로운 권력의 밑그림을 그려가고 있다. 여당을 장악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다시 국회를 지배하던 통치 스타일은 50년 만에 여야 정권교체를 이뤘던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 시절에도 온존했었다.
노 대통령과 여당인 민주당이 각각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정치적 실험이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도 이처럼 과거의 관성이 정치권에 뿌리깊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내에서 이른바 노 대통령 측근세력으로 분류되는 신주류 내에서 "상향식 공천, 집단 지도체제의 정비, 투명한 정치자금, 지역정서 극복 등 정치개혁이 성공하지 못하면, 즉 민주당이 환골탈태하는데 실패하면 당정분리의 정신은 당장 의미를 잃게 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새로운 권력을 만들어 가는 데 있어서 당정분리와 정치개혁은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노 대통령의 입장에서 보면 국회 과반수 의석을 가진 한나라당의 협조를 얻기 위해선 야당을 국정 운영의 동반자로 대우해야 하지만, 정치개혁의 차원에서 보면 양자 사이에 긴장관계가 형성될 수도 있다.
노 대통령측이 중대 선거구제를 추진할 의사를 보이고 있는 데 대해 한나라당이 이를 정략적 발상이라고 일축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 예다. 이렇게 보면 대통령과 야당의 관계 설정은 아직 정치실험의 초보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볼 수 있다. 2004년 총선의 결과에 따라 야당과의 수평적 협력관계는 회생불능의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
책임총리제를 골간으로 해 비대했던 대통령의 권한을 총리와 각 부처 장관에게 넘기는 과정에서도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국민에게 변화와 개혁을 약속한 노 대통령은 실질적으로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힘을 확보해야 한다. 노 대통령이 청와대를 개혁의 사령탑으로 삼겠다는 구상을 실천에 옮기고 있는 것도 개혁 추진력의 확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청와대가 개혁을 추진할 힘의 원천이 돼야 한다는 필요성과, 청와대가 무소불위의 권부에서 탈피해 권력분산의 주체가 돼야 한다는 원칙은 서로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토론문화를 정착시켜 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혀온 노 대통령이 이러한 갈등의 여지를 끝까지 토론과 설득으로 풀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노 대통령은 자신에게 위임된 권력의 원천이 자신의 정치적 명분, 도덕성에 대한 국민의 지지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이는 노 대통령이 추진하려는 개혁이 벽에 부딪힐 경우 다시 국민에 직접 호소하려 할 가능성을 예고한다고 볼 수도 있다. 노 대통령이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야당이 끝내 반대하면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데에서도 이 같은 기류를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포퓰리즘적 방식이 강행될 경우 새로운 권력의 모습은 노 대통령이 당초 추구하던 것과는 상당히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자신의 도덕성과 국민적 지지기반에 대한 과신,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당위론적 절박감 등이 또하나의 통제할 수 없는 권력을 만들어낼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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