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아침이다. 변화의 주역들은 그들의 정부를 '참여정부'라고 이름붙였다. 컴퓨터 모니터에서 온라인 멀티미디어 뉴스를 서핑하는 386세대는 참여정부가 실감날 것이다. 그리고 이제 시작된 변화는 아름답고 신선하게 느껴질 것이다.그러나 종이신문과 거실의 큼직한 텔레비전 수상기에 익숙한 기성세대는 청와대를 메운 젊고 낯선 얼굴들을 보며 마음이 거북할지 모른다. 그들은 '참여정부'에서 소외감을 느낄 법도 하다. 이들에게 변화는 지극히 불안한 모습으로 다가서고 있기 때문이다.
변화란 그런 것이다. 동서고금을 통해 정치적 변화는 보는 이에 따라 신선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다. 정치인들은 국민적 통합을 말하지만 그들 자신이 이미 편을 갈라놓았기 때문이다. 정치적 변화는 그런 속성을 지녔다.
그렇지만 오늘 맞는 변화는 그 폭이 다르다. 노무현 시대의 변화를 대변하는 가장 적합한 용어는 '386'일 것이다. 386의 특징을 딱히 집어 말하기는 힘들 것 같다. 하지만 386시대는 지난 20년간 한국정치를 좌우했던 '3김 시대'와는 확연히 다른 무엇이 있는 것 같다.
386이 세상을 보는 눈은 3김 세대와는 다르다. 그 다름이 대북관(對北觀)에서 현저하다. 그들은 북한을 위협적인 존재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북한에 쌀을 보내고 돈을 보내는 것을 퍼주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핵 문제가 걸려있다고 북한에 압력을 가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여 보유해도 놀라지 않을 듯 싶다. 그 핵은 결코 동족에게 향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심지어 그 핵은 우리 민족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그러기에 그들의 눈에 한미관계의 불평등은 더욱 두드러지게 어필해 온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런 386의 변화 욕구를 짊어지고 있다. 그 스스로 이런 386정서를 어느 정도 갖고 있다. 이를 미국 언론은 민족주의적이라고 표현한다. '타임'잡지는 그가 한복을 입은 모습을 '민족주의 쇼'라고 표현했다. 한국인의 정서로 보면 조금 우스운 해석이지만, 북핵사태에 골몰하고 있는 미국의 내심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북한정책은 노무현정부의 최대 과제가 될 듯 싶다. 한미동맹관계의 부침도 바로 북한정책에서 비롯될 것이다. 기성세대가 일반적으로 불안하게 느끼는 것은 국내정치의 개혁 쪽보다는 남북관계에서 벌어질 위험한 변화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안보 불안이다.
386의 대북정서는 북한에 갈라져 사는 민족에 무게가 있지만, 노무현정부의 상대는 북한의 김정일 체제이다. 끝내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고, 이 갈등 속에서 한미관계만 헝클어질 대로 헝클어진다면 이것은 최악의 시나리오가 된다.
"미국과 달라야 한다. 같아야 한다면 전쟁을 해도 좋단 말인가"라고 노무현 대통령은 말했다. 그런데 역설적인 것은 이 말이 기성세대의 불안을 씻어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386과 다른 냉전심리일까. 그러나 불안은 불안이다.
대통령이 가장 중요한 임무는 취임선서에서 보듯 국가의 안전보장이다. 그 요체는 국민통합의 대북정책이라고 생각한다. 대북정책은 약간 더디더라도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다져나가야 한다. 민족통합을 중시하는 것은 좋은 이상이지만,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그 유권자에 대한 현실적 의무가 있다.
새 정부는 '평화번영의 대북정책'을 표방하고 있다. 햇볕정책과 다른 점은 국민적 합의를 중시한다는 점이라고 한다. 그 합의가 인터넷 여론조사를 통한 386만의 견해가 아니기를 바란다. 국민적 합의가 수렴된 대북정책은 힘도 생기고 북한의 오해를 유발하지 않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좋아한다는 링컨이 역대 미국 대통령중에 가장 추앙받는 이유는 노예해방의 공덕이 아니다. 그것은 국민통합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김 수 종 논설위원 s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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