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는 묻어라. 하지만 그 절규와 시민들의 분노까지 묻어서는 안 된다."대구지하철 중앙로역 참극의 현장을 영구 보존하자는 의분(義憤)에 찬 요구들이 함성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참혹한 모습의 사고 전동차나 추모의 글이 남겨진 승강장 기둥 등을 보존함으로써 희생자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안전불감증을 질타하는 시민들의 분노를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자는 것이다. 인터넷에도, 거리와 학교 직장에도, 시민들 스스로 '통곡의 벽'이라 이름 붙인 중앙로역 벽에도 이 같은 요구가 넘쳐나고 있다.
유가족 대책위원회 윤석기(尹錫琪·34) 위원장은 "사고 전동차를 보존하고 중앙로역에 추모비를 세워 인재가 빚은 참극의 교훈을 백년 천년 동안 되새기자"고 밝혔다.
시민 도영례(43·여)씨는 "참사 현장을 전 국민이 볼 수 있도록 보존해, 누구든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내 가족도 이토록 참혹하게 숨질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야 한다"고 말했다. '반디불'이라는 아이디의 한 네티즌은 대구시의 사이버 추모게시판에 "승강장 기둥과 그 위에 남겨진 추모의 글을 영원히 보존하는 데 대구 시민 모두 힘을 모으자"고 썼다.
서해 훼리호 침몰사고(93.10)와 성수대교 붕괴사고(94.10), 서울 아현동 가스폭발사고(94.12), 삼풍백화점 붕괴참사(95.6) 등 대형 인재(人災)와 가슴 아픈 희생이 반복돼 왔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어느 한 곳 사고 현장을 보존한 예가 없다.
치부를 감추듯, 현장 정리를 서두를수록 상처가 빨리 아물기라도 하듯 덮고 묻고 재건하는 데 급급했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의 경우 참사의 현장을 보존해 안전과 역사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는 예가 드물지 않다.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조원철(趙元喆) 교수는 "국가 위기관리 시스템의 기본은 사후 수습이 아니라 예방과 방호에 있다"며 "사고 차량 가운데 하나를 영구 보존해 기억을 되새기고, 안전의식 교육의 장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특별취재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