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도, 우수도 지나 이제 정말 봄이 오려나 봅니다. 겨울 내내 봄을 기다렸는데 막상 눈앞에 다가오니 이젠 겨울이 아쉽습니다. 가족들과 계획했던 겨울여행, 온갖 풀과 나무들이 왕성한 활동을 시작하기 전 공부하려 했던 것 등이 생각나 갑작스레 마음이 급해집니다.길을 지나다 아주 오랜만에 군고구마 파는 곳을 만났습니다. 노르스름하게 잘 익은 군고구마를 호호 불며 나눴던 옛날이 생각나 한 봉지 사들고 들어왔습니다. 오늘은 고구마와 감자 이야기로 가는 겨울을 잠시 잡아볼까 합니다.
고구마와 감자는 언제나 함께 묶여 다닙니다. 공통점으로 치자면 중요한 식량으로 이용되고 본래의 고향은 중앙 혹은 남아메리카 대륙이었으며 서양에서의 재배역사가 아주 오래됐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들여온 것은 고구마는 조선 영조 때 대마도를 통해, 감자는 그 후인 순조 때입니다. 울퉁불퉁 못생긴 모양에 땅속에서 캐어 낸다는 점에서 아주 비슷한 식물이라고 생각하곤 하지만 두 식물은 근본적으로 아주 다릅니다.
우선 고구마는 뿌리이지만 감자는 줄기입니다. 덩어리진 모양은 두 가지 모두 영양분을 저장하는 저장기관으로 그리 되었지만 태생이 다른 것이지요. 모양을 잘 생각해보면 고구마는 표면에 너덜너덜 잔뿌리의 흔적을 가지고 있으며 감자는 반질거리고 곳곳에 움푹 패인 부분에 눈을 달고 있습니다. 줄기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감자는 줄기에 달린 눈마다 싹을 틔워 올리고 뿌리는 따로 나오도록 유도하지만, 고구마는 뿌리이니 땅속으로 내려가는 아래 부분과 싹을 틔워 줄기를 올려 보내는 윗 부분이 구분되는 것이지요.
식물분류학적으로도 서로 다른 과에 속하니 여러 장의 작은 잎으로 이루어진 복엽의 감자 꽃과, 잎과 꽃이 나팔꽃처럼 생긴 고구마는 사뭇 다릅니다. 고구마는 차라리 나팔꽃이나 메꽃과 더 닮은 식물이지요. 본질이 다른 두 식물을 언뜻 보이는 외양만 보고 한 무리로 분류했던 인간중심적인 사고가 여기에도 보입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고구마 꽃을 사진으로나 보았지 실제로 보고 관찰한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자생식물을 주로 공부하다 보니 고구마 밭을 들여다 볼 일도 거의 없지만 실제 고구마는 꽃이 잘 피지 않습니다. 뿌리에서 나온 싹을 나누어 모종을 만드는 방법이 보편화하자 이 식물도 점차 꽃을 만드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인간에게 길들여져 가는 것이라고나 할까요. 하긴 어떤 분은 놀랍도록 머리 좋은 식물이 인간을 이용하여 손쉽게 종족을 퍼트리는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하더군요. 식물들의 생각을 읽어내기가 정말 힘들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유 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 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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