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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터뷰 / 현기영 신임 문예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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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터뷰 / 현기영 신임 문예진흥원장

입력
2003.0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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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참극을 고발해 온 소설가 현기영(玄基榮·62)씨가 마침내 '더운 밥'을 먹게 됐다. 대표적 재야단체인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으로 재직하던 그가 관변 단체인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스스로 그렇게 표현했다. 유신말기 '4·3'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다가 '빨갱이'로 몰려 죽도록 맞았고, 그 후에도 당시의 비극과 악몽을 소설로 토해내던 그가 공직을 맡은 터이니 그럴 만했다. 문예진흥원은 공연장 입장료와 박물관·미술관 관람료 등에 포함돼 있는 문예진흥기금(연 300억원)으로 문화예술의 창작, 공연, 문화시설, 국제교류 등을 지원하는 단체. 문화관광부 장관이 임명하는 원장은 임기가 3년이며 기금지원 심사위원 등의 선임권을 갖고 있다.그의 선임은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예총) 회원단체 출신 원로가 임명돼 온 문예진흥원장 자리가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 소속 단체장에게 처음으로 넘어갔다는 점에서 문화계의 정권교체로도 비친다. 새 정부에 진보적 색채의 인사가 대거 참여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현 신임원장은 제주 출신으로 4·3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다른 사회적 쟁점에도 적극적으로 발언해 온 현실참여 작가이다. 2001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에 취임한 그는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 사건 규탄과 미국의 대이라크 전쟁 반대, 박정희기념관 건립 반대 운동 등에 동참했다.

―재야단체를 이끌다가 관변단체장을 맡은 소감은.

"의외입니다. (정신적) 복권(復權)이 이뤄진 느낌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1987년부터 명목상이지만 민주화가 이뤄졌고 결과적으로 작가회의도 많이 변했습니다. 당초 자유실천문인협의회에서 작가회의로 이름을 바꾼 것도 문학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겠다는 뜻에서였지요. 그로부터 16년이 흐른 지금 작가회의 구성원들의 정치적 스펙트럼도 다양해지고 문학의 경향도 달라졌지 않습니까. 80년대의 문학이 역사, 민족, 민중의 담론에 입각한 거대서사(巨大敍事)를 다뤘다면 지금은 그런 경향이 희석되고 일상을 얘기하는 미시(微視)서사로 옮겨간 것입니다. 작가회의가 저항 목표를 잃고 저항문학이 아닌 본격문학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물론 부당한 정치 현상에 대해서는 작품이 아니더라도 저항을 해야 하는 것이고…. 그런 측면에서는 작가회의 이사장이 문예진흥원장을 맡은 것은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문학 외에 다른 삶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하셨는데.

"작가회의처럼 '찬 밥' 먹던 그룹에 상징적으로 '더운 밥'을 준 것이니 제 마음대로 결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더욱이 지금까지 정권이나 관료들의 외면을 받았던 사람들의 중요한 가치가 복권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거부할 수 없었지요."

―기본 정책과 운영 방향은.

"17일 취임사에서도 밝혔듯 보수적, 관료적으로 운영된 문예진흥원의 기획·정책의 틀을 개혁적으로 바꿀 겁니다. 정책의 입안과 결정 과정에 문화예술인들이 적극 참여하도록 이끌겠습니다. 또 소외되거나 주변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을 끌어 안고 지원하겠습니다. 지원받는 작가만 아니라 향유자 계층도 일부에 집중돼 있어 소외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방에 있는 문화예술인과 주민에게 다양한 기회를 주는 문화 민주주의를 실현해 보겠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기준으로 누구를 지원합니까.

"문화예술을 창조하는 작가나 그것을 향유하고 소비하는 사람들의 폭을 넓혀야 합니다. 예컨대 문학의 경우 지방 작가 중에서도 역량 있는 사람이 있고 그들이 글을 싣는 문예지에도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내용이 많습니다. 그런 작가와 매체에 원고료만 지급해도 큰 힘이 될 겁니다. 타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화가나 음악가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면서 지역 주민에게 문화의 맛을 느끼게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지역 나름의 고유한 정서, 풍속과 자연에 기반을 둔 문화예술을 육성하는 한편 지방에서도 주류문화, 고급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진보적 성향의 문화예술인들에게 지원이 집중되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있는데….

"편중되지 않을 겁니다. 제가 개혁성향을 갖고 있다고 해도 나이가 환갑을 넘었는데 전복적인 일을 하겠습니까. 하지만 양로원에 돈 나눠주는 식으로는 지원하지 않겠습니다. 솔직히 말해 현재 회원이 1,100명에 이르는 작가회의를 비롯한 민예총 소속단체들이 지금까지 예총 소속단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홀대받은 것도 사실 아닙니까. 형평성을 고려하겠지만 고생한 사람들을 대접할 때도 됐습니다." (현 원장은 자신이 문예진흥기금 지원을 받아본 적이 없으며, 심사는 한 번 해봤다고 밝혔다.)

―문예진흥원 노조가 1월말 문화관광부의 간섭과 통제가 심하다며 자율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는데….

"다 같이 문화예술을 다루는 부처로서 지배종속 관계가 있기야 하겠습니까. 각자의 역할을 분담해서 보완하도록 하는 동시에 자율성을 확보하도록 해야죠."

―사회적 쟁점이 있을 때마다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습니다. 박정희기념관 건립 반대와 친일문인 역사적 평가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실 생각입니까.

"우리 사회는 보수와 진보가 혼융돼 있어요. 문제는 아직도 단죄되지 않은 과거의 정치적 압제자가 그 피해자들과 섞여 아무렇지 않게 지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에 대한 정확한 역사적 평가는 필요합니다. '펜대'를 쥔 지식인은 부당한 정치현상을 항상 부정하고 비판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원장으로 있는 동안은 마음 속으로 지원할 뿐 공개적으로 의사를 표현하고 행동할 수야 있겠습니까."

―창작활동은 어떻게 할 겁니까.

"행정과 창작이라는 이중의 아이덴티티를 수행해야지요. 아직 자유롭게 사는 버릇이 남아있어 힘들겠지만….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낮과 밤을 구분해서 해 보겠습니다."

―'창작과 비평' 봄호부터 소설 '누란(樓蘭)'을 연재하고 계신데….

"'누란'은 6세기경 타클라마칸 사막의 모래 속으로 사라진 도시를 소재로 한 소설입니다. 영화를 누리던 도시가 점차 황사에 파묻히듯 인간의 욕망도 그렇게 부질없이 사라진다는 내용을 그리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4·3'에 얽매여 제주의 역사와 산천에서 떠나지 못했는데 '도시 얘기'를 다루고 싶었어요. 여기서 누란은 오늘의 서울을 가리킵니다. 자본의 논리만을 좇는 세태는 정신의 황폐화를 가져오고 소비사회가 인간을 끝없는 욕망의 포로로 만든다는 것을 경고할 겁니다."

/최진환기자 choi@hk.co.kr

● 현기영씨는 누구

현기영씨는 '4·3'을 자신의 숙명이라고 표현한다. 여섯 살 때인 1948년 제주가 쑥밭으로 변하는 장면을 목격한 후 그의 삶은 그 언저리를 떠나지 못했다. 사춘기 때 두 번 씩이나 자살을 기도한 것이나 평생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도 당시의 충격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따라서 중1 때 만난 문학은 그에게 유일한 탈출구였고 자연스레 폭압에 저항하는 무기가 됐다.

1975년 등단작인 '아버지'에 이어 나온 '순이 삼촌'(1978)은 당시 금기시됐던 '4·3'의 진실을 처음으로 폭로했다는 점에서 기념비적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로 인해 보안사와 경찰에 끌려가 3일 동안 모진 고문을 당해야 했지만 그의 이런 경험은 오히려 그가 순수문학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았다고 한다. 도시인의 정신적 황폐를 다루기 위해 연재를 시작한 소설 '누란'에 등장하는 생생한 고문장면도 그의 끔찍한 체험을 연상시킨다. 뇌리에 또렷이 각인된 상처가 그의 의식을 제어하고 있는 느낌이다.

4·3문제는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2000년 국무총리 산하에 관련 위원회가 발족된 후 2년 6개월 간의 진상조사를 거쳐 그 결과가 이 달에 보고서로 나온다. 원장 취임 후 행정자치부 4·3사건 처리지원단 간부의 축하방문을 받기도 했다는 현씨는 "참혹함을 목격한 지 55년 만에, '순이 삼촌'이 나온 지 25년 만에 비로소 처음으로 국가차원에서 진상규명이 이루어지는 때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감회가 더욱 깊다"고 말했다.

● 약력

1941년 제주 출생

1967년 서울대 사범대 영어교육과 졸업

1967∼88년 서울 사대부중·고, 고척고 교사

197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등단

1989년 초대 4·3연구소장

2001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단편집 '순이 삼촌' '아스팔트' '마지막 테우리', 장편 '변방에 우짖는 새' '바람타는 섬' '지상에 숟가락 하나', 산문집 '젊은 대지를 위하여' '바다와 술잔' 등

신동엽창작기금(1986) 만해문학상(1990) 오영수문학상(1994) 한국일보문학상(1999)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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