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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못할 일]환갑에 써보는 늦깎이 학사모 힘들었던 기억 주마등처럼 늦기전에 가진것 나누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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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못할 일]환갑에 써보는 늦깎이 학사모 힘들었던 기억 주마등처럼 늦기전에 가진것 나누고 싶어

입력
2003.0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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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은 환갑인 내가 못 배운 한을 풀고자 뒤늦게 들어간 대학을 졸업하는 날이다.이 나이에 학사모를 쓰는 게 무슨 자랑이냐고 할 지 모르나 내겐 평생을 기다려온 너무나 뜻 깊은 날이다. 5년 전 '뒤늦게 무슨 공부냐'는 핀잔을 받으며 남몰래 방송통신대에 입학하고 2년 넘게 입시학원까지 다니며 늦깎이 공부한 끝에 연세대 3학년 편입시험에 합격한 기억이 새롭다. 부끄럽지만 대학원에도 합격했으니 이젠 어엿한 대학원생이 된다.

돌이켜보면 나만큼 고생하지 않은 사람이 있으랴마는, '왜 태어나 죽도록 고생만 하나'며 주린 배를 잡고 울던 일부터 공장에서 매 맞던 기억 등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난 형제도 하나 없는 유복자다. 어머니마저 돌이 되기 전에 재가해 부모 얼굴도 모른 채 지금은 고인이 되신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 자랐다. 전남 여수에서 낮에는 학교사환으로, 밤에는 그 학교 학생으로 어렵사리 상고를 졸업한 뒤 돈을 벌기 위해 1965년 무작정 상경했다. 첫 직장은 깃발을 만드는 무허가 공장이었다. 내게 주어진 일은 아침 6시부터 새벽 1시까지 물지게로 염색에 쓸 물을 길어 나르는 것이었다. 일을 못한다고 무던히도 많이 맞았다. 추운 겨울 불씨라고는 찾을 수 없는 공장 한 켠 바닥에 스폰지 이불을 깔고 굶주림과 추위로 오들오들 떨면서 난 "어떻게 하든 성공하겠다"고 다짐했다. 6개월 만에 첫 월급으로 받은 돈은 고작 500원.

그 뒤 난 청계천의 이불 파는 가게 점원으로 옮겼다. 어느 겨울날 산동네로 이불을 배달하다가 미끄러져 왼팔이 부러졌다. 주인은 "네 책임"이라며 치료비 한푼 도와주지 않았다. 가게에서 밤에 잠자다 연탄난로를 건드려 불을 내는 바람에 밀린 월급은커녕 1년 넘게 먹고 자는 것을 빼곤 한 푼도 받지 못했다.

헌 책이라도 사보려고 주인 몰래 새벽 4시에 일어나 신문을 돌리고 가게 문을 닫은 밤에는 졸린 눈을 비비며 '아이스케키' 통을 메고 장사를 했다.

10년 넘게 고생한 끝에 난 조그만 가게를 내고 마음씨 좋은 사람과 결혼해 기반을 잡았다. 졸업과 함께 고생했던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서 더 늦기 전에 내가 가진 많지 않은 재산 중 일부라도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써야겠다고 다짐한다.

나 재 암 61세·연세대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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