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주총 시즌을 맞아 기관투자가들이 소액주주들을 제치고 기업 주총의 새로운 복병으로 부상하고 있다.투자신탁회사 등 기관투자가들이 펀드별로 10억원 이상 혹은 펀드 운용금액의 5% 이상을 주식으로 보유한 기업에 대해서 의결권을 행사해 결과를 조회 공시하도록 의무화한 증권투자신탁업법 시행령 개정안이 12월 결산법인의 올해 주총부터 처음으로 적용된다. 이에 따라 투신운용사들은 해당 기업 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한 뒤 내용을 운용실적 및 영업보고서에 기재해 고객들에게 알려야 하며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이유를 공시해야 한다.
요즘 대한, 한국, 삼성, LG, 현대 등 주요 투신운용사들은 올해 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기업들의 주총 안건들을 검토하느라 분주하다. 해당 기업은 투신사별로 삼성 70여개, 한국60여개, 현투 및 대한 40여개사 등이며 삼성전자, 포스코, SK텔레콤 등 시가총액 상위권 업체들은 대부분 포함된다.
삼성투신운용의 이영섭 운용지원팀장은 "지난해말부터 애널리스트, 담당직원 등으로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어 주총 의결권 행사에 대한 준비를 해왔다"며 "의안별로 담당업종 애널리스트들이 분석한 내용을 확정해 주총에서 행사한 뒤 찬반 내용을 공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기관투자가들이 관심을 갖는 안건은 배당, 감자, 임원선임 등 이익분배와 향후 주가에 영향을 미칠 변수들이다. 따라서 주주 중시 정책 실현정도, 기업의 경영전략이 주가 상승에 도움이 되는 지 여부, 경영투명성에 영향을 미치는 이사 선임 등이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이미 대한, 한국, 삼성투신운용사는 13일에 공동으로 주총을 앞둔 한국전력에 정부가 아닌 민간 주주에게 우선 배당하라는 공개요구서를 보냈다. 유상부 포스코회장 연임에 대해서도 기관투자가들이 반대의견을 내며 다음달 열리는 주총을 벼르고 있다. 또 한국투신운용은 대우조선해양의 재무제표 승인안에 대해 반대한다는 뜻을 증권거래소를 통해 공시했다.
경우에 따라서 기관투자가들은 공동대응으로 더 큰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최근 삼성투신운용과 한국투신운용은 하이닉스반도체의 대규모 감자에 대한 반대입장을 밝혔다.
이처럼 기관투자가들의 목소리가 커지다보니 기업들도 주총을 앞두고 적극적인 방어전략을 펴고 있다. 모 투신사 관계자는 "해당기업에서 문제가 될 만한 안건에 대해서는 사전자료를 배포해 이해를 구하는 등 주총을 앞두고 기관투자가들을 대하는 기업들의 자세가 과거와 달리 적극적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일부 기업들은 배당 확대, 자사주 매입 등을 통해 주주들의 이익을 높이겠다는 뜻을 밝혔다. 삼성전자는 주주 배당을 지난해보다 175% 늘리기로 했으며 SK텔레콤은 3%의 자사주 매입을 통해, LG상사는 외국인 지분율 확대로 주가를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투신권에서는 그동안 기관투자가들이 주총때 의결권을 포기해 지배주주의 독주를 견제하지 못했는데 올해부터 주총에서 의결권 행사로 제대로된 기업감시기능을 발휘, 기업경영의 투명성 확보에 일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들의 의결권 행사가 정부의 간접적인 간섭으로 작용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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