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후 미국 워싱턴 DC 인근 펜타곤(미 국방부) 브리핑실. 한 미국기자가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에게 질문했다. "'미국이 주한미군 감축과 재배치에 대해 제의를 했다'는 한국정부의 발표를 확인해 줄 수 있느냐."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대답은 이랬다. "감축과 재배치는 사실과 다르다. 한국의 새 정부의 표현은 한미관계의 균형을 맞추는(rebalance) 것이다. 모든 논의는 현재의 안정을 깨뜨리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 이뤄질 것이다."한국 국방부 당국자들은 럼스펠드의 발언 내용이 최근 일고 있는 주한미군 감군 및 철수론에 대한 미국의 정확한 시각을 담고 있는 '모범 답안'으로 보고있다. 한 동안 미국 당국자들이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 '감정 담긴' 목소리를 내면서 혼란스러웠는데 럼스펠드가 명쾌하게 정리를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한미군재배치 문제와 관련, 미국의 본심은 무엇인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있다. 국내에서는 주한미군 재배치론이 "1950년 1월12일 한국을 태평양 방위선에서 제외해 북한의 남침을 가능하게 했던 '애치슨 선언'의 복사판"이라는 극단적인 우려와 "미국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를 압박하기 위한 협상카드에 불과하다"는 의견이 공존하고 있다.
한국 국방부 당국자들은 "대수롭지 않은, 미래의 양국 군대의 방향을 제시하는 원론적인 얘기"라고 잘라 말한다. 외교안보연구원 김태효(金泰孝) 교수는 "미국은 지상군은 감축하고 해·공군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주한미군의 전력재편을 계획해 왔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휴화산 폭발 그러나 주한미군 재배치라는 '휴화산'이 터진 시점이 신경이 쓰이는 대목이다. 바로 한국의 정권 교체기라는 점이다. 반미 촛불시위에 예민하게 반응했던 미국 정가가 한미관계의 재조정을 강조한 노무현 당선자의 취임을 앞두고 이 문제를 수시로 거론하는 이유가 궁금하다는 것이다.
지난 해 미군 장갑차에 의한 두 여중생의 사망과 가해 미군 병사에 대한 무죄평결 이후 촉발된 반미 정서는 미국 내 '반한 정서'를 불러일으켰다. 이에 미국 정가의 보수 인사들과 언론들은 주한미군 철수론의 불을 지폈고 지난 해 말 계룡대를 방문한 노 당선자의 "주한 미군이 없는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발언은 기름을 끼얹었다.
더욱이 미국 인사들의 '한강 이북 지역 주둔 부대(미 보병 2사단)의 남쪽 재비치 발언'은 미군의 인계철선(trip wire) 역할의 변화를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은 줄곧 미군의 한강 이북 전진 배치를 원했다. 북한의 1차 공격대상이 되는 한강 이북 주한미군을 인계철선으로 활용해 미국의 자동개입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해외주둔 미군 보병부대가 최전방에 배치되는 일은 유례가 없었기 때문에 동두천의 미 보병 2사단 주둔은 공고한 한미동맹의 상징이 돼왔다.
변화는 불가피 리언 J 라포트 한미연합사령관은 20일 열린 '한반도에서의 도전과 한미 동반자 관계'세미나에서 상호방위조약 재검토에 대해 미 당국자로서는 처음으로 언급했다. 라포트는 "양국 군대의 임무, 지휘관계, 전력구조, 배치에 대해 재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한국 새 정부 관계자들의 '동등한 한미관계' 강조와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 등이 주한미군 재배치 가능성을 잇따라 시사한 끝에 나왔다는 점에서 의미를 둘 수 있다. 상호방위조약의 개정은 50년간 지속된 한미 안보 틀의 변화를 뜻하는 것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미군이 한강 이남으로 부대를 옮긴다고 해서 인계철선 기능이 약화되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장기적으로 한반도에서의 미국의 임무가 주도적 역할(leading role)에서 지원역할(supporting role)로 전환될 것은 분명하다"고 보고있다.
결국 미군 재편은 신속·기동·장거리 타격을 중심으로 한 해·공군력 보완과 지상군의 감축쪽으로 가닥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극단적 철수론은 미군의 한반도 주둔이 한국과 미국 모두에게 득이 되는 '윈-윈 게임'이 지속되는 한 설득력이 낮다.
/김정호기자 azure@hk.co.kr
■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유엔군사령관에 속했던 작전통제권(operational control)은 1977년 한미연합사의 창설과 함께 연합사령관에게 넘어왔다. 1994년 12월 1일에 평시 작전통제권은 한국 합참의장에게 환수되었지만 전시 작전통제권은 여전히 한미연합사령관에게 위임된 상태다.
전시 작전통제권 문제는 한미간 불평등한 관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노무현(盧武鉉)대통령 당선자가 "막상 전쟁이 나면 국군에 대한 지휘권조차 대통령이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한 이후 논란이 증폭됐다.
국방부는 이에대해 "한국군이 미군의 일방적인 지휘를 받는다는 뜻은 아니다"고 설명한다. 한미연합사령관은 한미양국 합참의장의 협의체인 군사위원회(MC)의 통제를 받기 때문에 일방적인 작전권 행사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시 작전통제권이 없는 군 통수권은 '빈 껍데기'라는 지적도 있다. 군 통수권은 편성·보충·동원·인사 등의 군정권과 작전통제 권한인 군령권으로 구분된다. 전시에는 전쟁수행의 핵심인 군령권을 한미연합사령관이 갖고 한국 대통령은 군정권만 갖게된다.
논란이 불거지면서 전시작전통제권 문제는 다시 양국간 대화 테이블에 오를 전망이다. 한미양국은 지난 해 12월 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양국의 '지휘관계(command relationship)'의 검토에 합의한 바 있으나 구체적인 환수시기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국방부 당국자는 "전쟁 위험이 가시적으로 사라진다는 조건 하에 장기적으로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를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호기자
미군이 한국에서 철수할 경우 국방부는 주한미군 대체비용이 최소 16조원에서 최고 31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미군 공백이 가장 큰 분야는 대북 정보. 한국군은 대북 정보의 80% 이상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 24시간 북한의 동태를 감시하는 첩보위성과 U-2 정찰기, 통신감청을 통한 미군의 정보력 등은 화폐가치로 환산하기 힘들 정도다. U-2 정찰기는 한번 임무수행에 약 100만 달러(12억원)가 소요된다. 정보전 우위는 전쟁 억지력으로 이어진다.
패트리어트 항공기 및 대탄도탄 요격 미사일이 구축하는 대공 방어망에 구멍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1994년부터 미군의 패트리어트 1개 대대가 그 공백을 메우고있는 상황으로 2조원 규모인 48기가 배치되어있다.
이 밖에 한미연합군이 사용하는 전시비축탄약(WRSA) 비용만 4조원, AH-64 아파치 공격용 헬기는 대당 300억여원, 70여대가 있는 F-16은 대당 340억원에 달한다.
/정원수기자 nobleli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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