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소개한 신간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김영두 옮김, 소나무발행)가 폭발적 반응을 얻고 있다. 10일 나온 1쇄 3,500부가 책방에 깔린지 사흘 만에 거의 다 팔려 18일 2쇄 5,000부를 찍은 데 이어 곧 3쇄에 들어가 늦어도 28일까지 5,000부가 더 나올 예정이다.국내 최대 인터넷서점 예스24에서는 18, 19일 이틀간 품절 사태까지 빚어졌다. 이 책은 인터넷서점 예스24와 알라딘의 인문 분야 베스트셀러 1위,오프라인 교보문고에서 3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문 고전 번역물이 20여일만에 3쇄를 찍고 베스트셀러 꼭대기에 오른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어서책을 낸 출판사도 깜짝 놀라고 있다.
이 책은 조선 성리학의 대가 퇴계 이 황과 26세 아래인 고봉 기대승이 13년간 주고받은 편지를 옮긴 것으로, 나이와 직위를 떠나 진실한 벗으로사귀었던 아름다운 우정의 기록이다. 두 사람은 편지로 안부를 묻고 ‘사단칠정론’을 비롯한 학문적 논쟁을 벌였다.
결코 대중적이지 않을 것 같은 이 책이 독자를 사로잡은 것은 400여년전 한문 편지를 아름답고 쉬운 우리말로 풀어낸 번역의 공이 크다. 딱딱하고 고루한 기존 번역과 달리 이 책은 한글 세대의 감수성이 빛나는 반듯하고 기품 있는 문장을 선보이고 있다.
2년 동안 꼼꼼한 손길로 책을 만든 편집자의 정성도 지나칠 수 없다.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일상의 편지와 학문을 논한 다소 어려운 편지를 1부와 2부로 따로 묶은 것이며, 각 편지의 끝에 붉은 인장을 새겨 보낸 이를표시하고 각주 번호를 본문 활자와 다른 색깔로 표시한 데서 독자에 대한섬세한 배려가 느껴진다.
인쇄 용지도 특별하다. 보통 모조지보다 얇고 가벼우면서도 인쇄가 선명하고 종이 색이 부드러운 ‘아이프라임’ 지를 써서 600쪽이 넘는 책이 350쪽 정도 밖에 안 돼 보인다. 책이 너무 두꺼우면 거부감을 갖지 않을까고심한 끝에 선택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책도 독자가 외면하면 무슨 소용이랴.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는 잘 쓰고 잘 만든 책과 그것의 진가를 알아본 독자의행복한 만남을 보여주는 보기이다. 책값이 2만5,000원으로 비싼 편인데도말이다.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게 제대로 번역된 고전에 그만큼 목말랐다는 뜻도 되겠다. 이를 계기로 제 2, 제 3의 ‘퇴계와 고봉…’이 나오기를기대한다.
/오미환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