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요. 지금이야 부산 떨지만 이미 다 끝난 거라 바꾸기가 쉽잖을텐데." 21일 오전 광주지하철 1호선 금남로4가역 건설현장은 7월 시범운행을 앞두고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었다.지하 3층 플랫폼에는 최첨단 '스크린도어'를 설치하는 인부들의 손놀림이 분주하고 천정에는 스프링클러 작동에 필요한 파이프와 전선 등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다. 동행한 공사 관계자는 "전동차엔 첨단 난연성 내장재가 들어가고 역사에도 예비전원으로 1시간 가량 비상 조명이 작동된다"며 방재 시스템에 문제가 없음을 유달리 강조했다.
과연 그럴까. 대구 지하철 참사 '시나리오'를 단순 적용하더라도 곳곳에서 허점이 눈에 띈다. 중앙 통제실에서 즉각 재난상황을 감지할 수 있는 장치나 폐쇄회로 TV가 승강장 주변에만 있어 대구 지하철과 같은 사건 발생시 별다른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역사의 동선(動線)은 난마처럼 얽혀 있어 유사시 승객들의 탈출이 힘들어 보인다. 승객들이 선로로 추락하는 것을 막기위해 설치되는 스크린 도어는 차량의 화재 발생시 또 다른 장벽이 될 수도 있다.
대전 중구 서대전 네거리. 요란한 소음속에서 지하철 1호선 제7공구 공사가 한창이었다. 지상에서는 인부들이 콘크리트를 타설하고 땅속에서는 굴착작업이 벌어지고 있었다. 현장 관계자는 "토목공사는 방재와는 직접 관련이 없기 때문에 작업중단이나 설계변경은 없다"며 "곧 발주할 건축공사와 전기 설비 전동차 등으로 대폭적인 설계변경 및 보완이 필요한데 막대한 추가 비용이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현재 설계가 진행중인 대전 지하철 전동차의 경우 대구지하철 전동차와 별반 차이가 없다는 지적이 많다. 의자나 마감재 따위는 화재시 살인가스를 내뿜는 저급 난연재가 고스란히 들어가고 역사 승강장에도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는 것으로 설계됐다.
특히 대전역과 중앙로역 승강장은 40m 깊이 지하 5층에 자리할 예정이어서 유사시 승객들은 꼼짝없이 갇힐 수 밖에 없다. 대전지하철 관계자는 "대구 사고 이후 안전 장치 보완을 검토 중이지만 전동차 제작비만 1량당 6억∼8억원이 더 들어갈게 뻔해 어느 정도까지 보완할지는 의문"이라고 솔직히 토로했다.
이 같은 사정은 현재 공사가 진행중인 부산 3호선과 서울의 9호선, 대구의 2호선 등에서도 크게 달라보이지 않았다. 부산의 경우도 "대구1호선보다 나빴으면 나빴지 좋지는 않다"는 얘기가 떠돈다. 부산교통공단 관계자는 "승강장에 스프링클러가 없는 등 건축설비부문은 1, 2호선과 기본시스템이 바뀐 것이 없다"고 말했다. 부산공단측 역시 "문제점을 분석, 결과를 반영하겠다"고는 하지만 예산과 산적한 행정절차 때문에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부차원의 지원과 대책이 없으면 지금 상황에서 뜯어 고치기는 힘들 것"이라는 관계자의 토로가 오히려 솔직해보였다.
서울지하철 9호선의 경우에도 기본적인 방재시스템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여러 차례 있어왔다. 지난해 8월 서울시립대 지진·방재연구소가 보고한 '서울시 지하철 방재설계 기본방향연구'에 따르면 김포공항역과 고속버스터미널역 등 4곳이 안전구역(게이트를 빠져나온 뒤의 대합실)까지 피난하는데 6∼8분이 걸렸다.
이는 피난허용시간인 6분을 넘는 것이다. 방재연구소는 "김포공항과 고속버스터미널역의 경우 재난을 대비해 개찰구 수용능력을 증가시키고 승객의 피난방향과 통로를 쉽게 인식할 수 있도록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광주=김종구기자 부산=김창배기자 대전=전성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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