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효숙 지음 마고북스 발행·7,500원'IMF, 가게 부도, 거리로 내몰린 가족, 남편의 알코올 의존과 폭력…'
네티즌 사이에 '그여자이야기' 또는 '손풍금'이라는 아이디로 더 잘 알려진 안효숙(42)씨는 IMF의 풍랑 속에서 가족 해체의 아픔을 겪었다. "한 발자국만 밀리면 절벽 아래로 떨어질 상황이었을 때도 한번도 희망을 놓은 적이 없는" 그녀에게 힘을 실어준 것은 인터넷이었다. 가난 속에서도 올곧게 자라주는 아이들, 떠밀리듯 흘러 들어간 시골동네의 착한 이웃들, 장터의 고단한 삶의 풍경을 따뜻하게 때로는 유머 넘치는 시선으로 전해준 그녀의 글들은 40대를 대상으로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언제나 인기였다.
'나는 자꾸만 살고 싶다'는 그녀의 그 짧은 글들을 묶은 책이다. 그녀는 길거리에서 빵을 만들어 팔고, 5일장을 떠돌며 화장품을 파는 밑바닥 삶에서도 희망을 고집스럽게 길어 올렸다. "남편의 술주정에 어느 날은 얼굴이 바위 만큼 커지고, 어느날은 온몸에 파란 옷을 입고 또 다른 아침을 열면서도 나는 악착스럽게 살아남을 생각만 했다."
그렇게 오지의 장터로 떠밀려 온 삶이지만, 그녀는 체념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난생 처음 경험한 노상판매 아르바이트도 소주 한 병의 힘으로 부끄러움을 딛고 감당해냈고, 보일러 기름이 떨어진 어느 겨울날, 추위에 떠는 아이들을 김밥말기 놀이를 하자며 이불로 돌돌 말아넣어 잠을 재우며 견뎌 나갔다.
책에는 가족을 거리로 내모는 사회적 상황, 가정 내 폭력으로 멍드는 여성의 문제에 대한 예민한 시선이 웅크리고 있지만 파리 날리는 옆 좌판의 사정에 눈을 떼지 못하고, 굶주림에 지친 고무줄 장수를 위해 아무 소용없는 고무줄을 사주고 마는 그녀의 따뜻한 시선이 더욱 짙게 배어 있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