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나를 움직인 이 책]예언자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나를 움직인 이 책]예언자

입력
2003.02.22 00:00
0 0

80학번을 달고 만난 캠퍼스의 모습은 설렘과 기대 그리고 가치관의 혼돈과 막막함이 공존하는 무중력 상황이었던 것 같다. 10.26에서 12.12사태, 이어지는 문무대 입소, 광주항쟁, 그리고 휴교령…. 많은 젊은이들이 '해방 전후사의 인식', '전환시대의 논리'를 탐독하며 그 동안 공황 상태였던 자신들의 의식을 키워 나가고 있었다.반면에 내가 심취했던 주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였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삶의 질을 논의하고 있을 때, 우리는 죽어가는 동료의 모습을 볼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 너무 암담했기 때문이었다.

킹 크림슨의 노래 '묘비명(Epitaph)'을 들으며 생맥주의 맛도 알았고, 서클 활동과 데모에도 참여해 보았지만 늘 뚜렷한 해답 없이 이어지는 행동 논리에 자책을 할 때 '예언자'(문예출판사 발행, 강은교 옮김)를 만났다. 마치 예수의 형상을 연상시켜 주는 표지 그림은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고, 사랑, 결혼, 베풂, 일, 우정, 집, 법, 이성, 시간, 종교, 죽음, 선악 등 근본적 삶의 문제를 제기하고 또 풀어나간 이 책은 어린 나에게 많은 위안과 대안을 제시해 주었다.

"함께 노래하고 춤추고 즐거워 하되, 그대들 각자의 마음은 고독하게 하라. 마치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외로운 기타줄처럼…"('결혼')

"그대들 만일 사랑으로 일할 수 없고 다만 혐오로써 일할 수밖에 없다면, 차라리 그대들은 일을 버리고 신전 앞에 앉아 기쁨으로 일하는 이들에게 구걸을 하는 게 나으리라."('일')

"삶과 죽음은 한 몸, 강과 바다가 한 몸이듯 희망과 욕망의 저 깊은 곳에서도 꿈꾸는 씨앗들처럼 그대들의 가슴은 봄을 꿈꾼다."('죽음')

이 책은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봤을 법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지만, 지브란의 글은 구태의연하지 않고 신선하게 다가 왔다.

필자에 대해 알아보니, 놀랍게도 열 다섯 살에 초고를 쓰고 20여 년 동안이나 원고를 품고 다니며 수정을 거듭했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아랍 출신으로 미국으로 건너 가 숱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키워나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가 정치를 이야기할 때, 모두가 정치 이야기에 빠져서는 안되겠다는 생각도 이때에 하게 되었다. 학교의 철문이 닫혀진 휴교령 시절에 매주 한 권의 책을 읽으며, 의견을 나누었던 친구들의 모습이 그립다. 이제는 386도 아닌 486세대로 접어드는 우울한 시점이지만, 그래도 힘과 위안이 되는 것은 20여년 전의 아름다운 추억들이다.

정 재 옥 공연기획사 CREDIA 대표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