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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 佛 과거향수 자극하는 소설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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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 佛 과거향수 자극하는 소설 "혁명"

입력
2003.0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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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인들은 과거에 조상들이 꿈꾸고 이룬 세계에 대한 향수가 깊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 분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최근 유엔 안보리에서 프랑스 외무장관은 전쟁에 반대하며 프랑스의 유구한 역사를 상기시켰다.이달 초 갈리마르출판사에서 나온 르 클레지오의 소설 '혁명'(Revolutions)은 프랑스 언론의 절찬을 받으며 곧 베스트셀러 목록 상위에 올랐다. 550쪽 분량의 이 소설은 친척이 들려주는 자기 가족들의 옛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소년 장 마로가 2세기 전에 인도양의 모리셔스 섬으로 떠난 조상의 꿈을 다시 산다는 줄거리다.

2년 전 한국을 방문한 르 클레지오는 프랑스에서 살아있는 신화적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은밀하고 이국적인 글, 시적이고 아름다운 문체는 독자를 사로잡는다. 1940년 남불 니스에서 태어난 그는 9살 때 처음으로 나이지리아를 방문하여 그곳의 의사인 아버지를 만난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그의 조상은 대대로 살아오던 프랑스 서북부의 브르타뉴 지방을 떠나 당시 프랑스령인 모리셔스 섬에 정착했다. 오늘도 이 섬의 한 거리가 '르 클레지오'라고 불리는데, 브르타뉴어로 '르 클레지오'는 이 지방의 선사시대 유적인 '줄지어 서 있는 거석'을 뜻한다.

아프리카에서 아버지와의 첫 만남은 그에게 유럽 문명과는 다른 문명에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며, 후에 작품들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23세에 처녀작 '구두 소송(口頭燒送)'으로 르노도 상을 탄 후 과테말라와 멕시코에서 살며, 그는 조상들의 모험과 인디언들을 통해 아메리카 식민지화로 잃어버린 인간성 되찾기를 주제로 소설을 쓰고 있다. 지금까지 '사막'(1980), '멕시코인들의 꿈'(1988), '금을 찾는 사람' (1985), '금붕어'(1997) 등 약 30여 작품을 발표했다.

'혁명'은 르 클레지오의 자전적 소설이다. 니스에서 태어나 자란 장 마로는 학교 수업 후 장님이 된 고모 방문을 일과로 삼는다. 고모와 그의 가족은 모리셔스 섬에 그의 조상들이 흑인 노예들을 해방하고 교육에 힘쓰며 이룩한 낙원을 1910년 배반에 밀려 떠났다. 고모는 그에게 조상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을 여생의 과제로 여긴다. 고모가 간직한 유품들 가운데 조상과 장을 잇는 또 하나의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은 18세기 말 아내와 아기를 데리고 브르타뉴의 항구를 떠나 모리셔스에 처음 도착한 조상, 장 유드 마로의 일기다. 일인칭으로 쓰인 이 일기는 삼인칭의 화자 장 마로의 추억과 얽히며, 과거 혁명의 역사가 현재에 이어지게 하고, 미지의 땅을 찾아 낙원을 이룬 조상의 꿈을 그의 꿈과 하나게 되게 한다.

소설은 전쟁에서 부모를 잃은 모로코인 아내와 함께 장이 결혼 후 모리셔스 섬을 찾는 것으로 끝난다. 2세기 전에 그곳에 묻힌 장 유드의 묘를 방문해 그는 묻는다. "우리는 동시에 여러 시대 속에 살 수 있을까?" 조상의 꿈으로의 회귀는 태어날 자손의 꿈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조 혜 영 재불번역가·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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