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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대한민국사

입력
2003.0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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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홍구 지음 한겨레신문사 발행·1만1,000원"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초중고 시절 조회를 할 때마다 빠지지 않았던 '국기에 대한 맹세'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배웠다. 과연 그러한가. 대한민국은 그런 맹세를 바칠 만큼 자랑스러운가.

역사학자 한홍구(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의 '대한민국사'는 그런 의심에서 출발해 대한민국의 역사와 정체성, 오늘의 현실을 되짚어 보고 있다. 이 책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100년의 현대사를 26개 주제별로 살피면서, 기존 학설과 통념에 도전한다.

예컨대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는 헌법 전문도 저자가 보기에는 해방 이후 권력을 장악한 친일파들이 도덕적 결함을 감추기 위해 조장한 허구다. 임시정부의 강령은 토지 국유화, 주요산업 국유화, 파업의 자유 등 국가보안법이 지배하는 대한민국에서는 '불온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었다. 임시정부는 3년간의 투쟁 끝에 광복군의 군사 주권을 중국군으로부터 되찾았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군사작전 지휘권은 정부 수립 후 지금까지 반세기가 넘도록 미군이 쥐고 있지 않은가.

그의 날카로운 시선은 보수냐 진보냐, 친미냐 반미냐, 친일파 논쟁, 병역비리 논쟁, 외국인 노동자 차별 문제 등 현재 우리 사회의 민감한 쟁점을 역사적 뿌리를 더듬어 해결책을 찾는 대목에서 두드러진다.

보수―진보 논쟁과 관련, 그는 '지킬 것을 지키기 위해 개혁조차 포용하는' 참된 보수와,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이대로!'를 외치는 수구는 '똥과 된장만큼 다르다'고 일갈하면서, 참된 보수주의자로 구한말 이건창과 황현을 소개한다. 두 사람은 동학군을 때려잡자고 주장한 봉건주의자였지만, 이건창은 동학군을 봉기하게 만든 학정을 맹렬히 비판했고, 황현은 나라가 망하자 자결했다. 반면 오늘날 보수를 자처하며 진보 세력을 적대시하는 무리는 '참된 보수주의의 덕목인 도덕성·일관성·책임감·지혜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가당찮은 족속들'이라는 것. 그는 군사독재 시절 인권 유린에 저항한 것도 보수주의자가 아닌 진보주의자였음을 상기하면서 "진보와 보수 편가르기에 앞서 보수가 먼저 수구와 결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신선하고 도발적인 그의 글쓰기는 반미―친미를 다룬 대목에서 절정에 이른다. 그는 일제 말기 '반미성전'에 앞장섰던 친일파가 해방 후 친미로 돌아서 '반미=빨갱이'로 몰아온 '웃기는' 역사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해방 이후 우리 사회의 상류층은 집단적으로 몹쓸 불치병인 '후천성 반미 결핍증'에 걸렸다. 이 병의 특징은 멀쩡한 두 발을 갖고서도 자신이 홀로 설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두 발로 대지에 굳건히 내려 서려는 건강한 사람들을 감옥에 가두고 두들겨 패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한다는 점이다."

결국 그는 대한민국의 비틀린 과거와 그 잔재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오늘의 현실을 돌아봄으로써 대한민국이 참된 민주공화국으로 거듭 나는 길을 묻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게 읽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는 책이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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