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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정치 문명' 권용림 / "보수 아메리카니즘, 美우월주의의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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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정치 문명' 권용림 / "보수 아메리카니즘, 美우월주의의 뿌리"

입력
2003.0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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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대 권용립(49) 교수의 '미국의 정치 문명'(삼인 발행)은 미국 정치의 이념적 토대를 파헤친 역저이다. 1991년 미국이 걸프전을 끝낸 직후 '미국―보수적 정치 문명의 사상과 역사'라는 제목으로 나온 초판을 개작한 이 책이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앞두고 나와 공교롭다. 감상적 미국 기행문에 흔히 나타나는 단편적 묘사와는 거리가 멀며 "미국적 이념의 틀 안에서 튼튼한 논거와 정제된 논리를 바탕으로 전개된 미국 역사·정치학자들의 이론과 논쟁을 통찰해 미국 정신의 근저를 살피고자 한 책"이다.권 교수는 이 책에서 미국 문화의 근저에 자리잡고 있고, 미국인의 집단 자의식으로 굳어진 정치 이념을 '보수적 아메리카니즘'이라고 불렀다.

미국인이 믿고 있고, 많은 외국인들도 받아 들이고 있는 '미국은 진보적 국가'라는 이미지와 달리 그는 미국이 짧은 역사를 통해 독특한 보수주의 집단 정신을 형성했다고 보았다.

―'보수적 아메리카니즘'의 의미는.

"서유럽 문화를 이은 미국 정치 문명에는 고대 공화주의와 근대 자유주의, 그리고 미국에서 시민종교로 자리잡은 캘빈주의가 뒤섞여 있다. 미국의 이념은 자본주의 경제 윤리와 자유방임주의를 지지하는 개인주의적 보수주의로, 또 한편으로는 사회의 유기적 통일과 전통을 중시하고 변화를 혐오하는 유기체적 보수주의로 전개되었다. 대체로 경제에 대한 국가 간섭을 반대하고 자유와 평등의 공존을 불신하며, 미국의 원초 이념과 체제를 그리워하며 전통을 숭배하는 회귀 의식을 보여왔다. 이런 의식이 반공과 반급진주의의 밑바탕이다."

―미국과 유럽은 다른가.

"근대 영국이나 프랑스의 자유는 시간적 타자인 봉건제나 과거에 대한 저항인 데 비해 미국의 자유는 공간적 타자인 외부와 적을 부정하고 징벌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여기에는 구세계와 다르다는 우월주의나 예외주의가 함께 작용하고 있다. 미국은 서구의 세속주의에 뿌리를 둔 권선징악의 나라다. 하다 못해 같은 진보라도 미국의 진보와 유럽의 진보는 성격이 다르다. 거칠게 말해서 미국의 진보주의는 인도주의가 목적이라기보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궁극적으로 미국의 이익에 반할 것이라는 의식이 깔려 있다."

―미국의 일방주의 외교를 어떻게 봐야 하나.

"미국의 보수 외교정책 전문가 로버트 케이건은 미국이 유럽보다 군사와 경제에서 훨씬 우위에 있기 때문에 현실적 외교 노선을 갖는 것이고 그렇지 못한 유럽은 이상주의로 간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미국 역사학과 사회과학의 주된 전통은 미국 역사의 예외성을 은근히 믿는 것이며, 미국인의 집단 자의식 또한 이런 우월적 자화상을 갖고 있다. 신이 선택한 '아메리카의 신세계'라는 신념은 서구의 세속 외교에 바탕하면서도 서구와는 달리 십자군적 사명감과 절대적 선악 관념에 집착해 온 미국의 전통을 낳았고, 이것이 9·11 이후 더 뚜렷해지고 있는 미국 외교의 도덕적 독선주의의 바탕이다."

―미국의 전통적 대한관은 일방으로 부정적이라고 했는데.

"우리에게 미국은 공기와 같이 옆에 있지만 미국에게 한국은 그렇지 않다. 한 10년 전쯤 하버드대 수업 시간에 교수가 칠판에 한반도를 없앤 채 동북아 지도를 그려 놓고 "이상한 게 없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때 30명 가까운 학생 중 어느 누구도 이상한 점을 눈치채지 못했다. 한국의 일상에는 미국이 있지만 미국의 일상에 한국은 없다. 그들에게는 한국전, 당시 야전병원을 다룬 미국 영화 '매쉬(MASH)'나 고아 수출, 북한 문제 등이 작은 관심사일 뿐이다."

―국내의 반미 움직임을 어떻게 생각하나.

"한국의 반미는 미국에 총체적으로 적대하는 반미주의, 즉 정치적 신념의 반미라기보다 그동안 일방통행으로 일관한 한미 관계와 우리의 대미 콤플렉스를 교정하려는 역사적 요구다. 하지만 반미와 안티 아메리카니즘을 구별해야 한다. 아랍의 반미와 한국의 반미는 같은 성질의 것이 아니다. 아랍의 반미는 미국의 친이스라엘 정책이 만들어 낸 것이지만 한국의 반미는 미국의 대북 정책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다. 촛불 시위가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그 시위를 반미주의 틀로 과장하지 말아야 한다. 반미 정서가 미군 철수 구호로 연결되고, 한미 군사동맹의 급격한 약화와 이에 따를 제반 사태를 우려하는 외교 현실 판단을 친미로 매도하는 것은 역사의 언어로 정치를 매도하는 것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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