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화재로 전원이 끊겨 전동차 문이 열리지도 움직이지도 않았고, 비상등마저 꺼져 피해를 키운 것은 '값 싸게 빨리빨리'를 외쳐 온 한국 지하철 건설 논리의 업보라고 하자. 그러나 화를 입지 않아도 좋았을 통과 전동차에서 더 큰 피해가 일어난 것만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기관사가 즉시 전동차를 세우고 승객 안전을 생각했더라면, 상황판단 실수로 역에 도착했더라도 그냥 통과했더라면, 어쩔 수 없이 섰다 해도 문만 다 열었더라면…. 지나간 일에 이런 가정을 해보는 것은 속절없는 짓이다. 그러나 수 많은 시민의 목숨을 책임진 기관사란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대처할 수 있는가, 이런 의문에 이르면 한탄을 참기 어려워 진다.
그는 중앙로 역 200m 지점에서 연기를 보았다고 말했다. 그 전에 사령실로부터 화재가 났으니 운전을 주의하라는 통보를 받은 상태였다. 급 브레이크를 밟아도 미치지 못했으리라고 반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불타는 전동차 옆에다 차를 세운 자살행위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위급상황 발생시 무정차 통과하도록 근무지침에도 명기되어 있다. 세 살 난 아기도 앞에 장애물이 나타나면 걸음을 멈추리라.
20일 아침 국내 모든 신문의 1면을 장식한 사진 한 장이 기관사와 지하철 안전업무 관련자들의 직무유기를 증명하고 있다. 불타는 전동차 옆에 멈춰 서 독가스가 차내로 스며드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경미한 사고가 났으니 차내에서 기다리라는 기관사의 안내방송에 따라 승객들이 코를 감싸 쥐고 고통을 이겨내는 모습은 무엇을 말하는가. 문을 열어 젖히고 대피하라 했더라면 무사했을 1080호 전동차 승객들의 억울한 희생에 사죄하는 뜻에서라도, 기관사와 사령실 근무자들의 직무태만은 꼭 책임 소재를 밝혀 적절한 조치를 취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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