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에 들어가 일년만 살면 제왕적 대통령으로 변한다." 박관용 국회의장의 말이다. 지난 수요일 도산아카데미 세미나 초청 연설자로 나온 박 의장은 노무현 대통령 재임 5년이 아마 우리나라 대통령책임제의 존속여부를 가늠하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속에는 노무현 대통령도 청와대에 들어가면 제왕적 대통령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다는 암시가 배어 있다. 지금 노 당선자를 놓고 말이 많지만 제왕적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걱정하는 분위기는 아니어서 박 의장의 말이 관심을 끈다.■ 박관용 의장은 김영삼 대통령 재임시 첫 비서실장이다. YS가 대통령이 된 후 가까이서 지켜보았으니 청와대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대통령이 청와대에 들어가 일년쯤 지나면 나라의 모든 일이 자신의 책임과 권한 아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장관이 자기 책임 아래서 충분히 하면 될 일을 가지고 대통령을 만나 보고하고 승락을 받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박 의장은 이런 현상을 빚대어 "권한을 청와대로 반납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 박 의장은 장관들이 이렇게 자신의 권한을 청와대로 반환하는 것을 두 가지 이유로 설명한다. 첫째 장관들이 대부분 자기 권한 안에 있는 일이라도 대통령에게 보고를 하지 않으면 힘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고, 둘째 자칫 책임시비에 몰릴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쉽게 이야기하면 장관들이 모든 권력은 청와대로부터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통령이 장관의 일을 다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연락기능이면 족한 대통령비서실이 사실상 장관이 반환한 힘을 행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대한 청와대 비서조직은 더욱 정부의 기능을 왜곡하고 만다고 한다.
■ 박 의장은 노무현 당선자를 만났을 때 청와대가 왜 제왕적 대통령을 만드는가를 설명하며, 그 유혹을 벗어나려면 자기 몸을 꼬집는 심정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충고를 했다고 술회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이 거의 제왕적 대통령이었으며 그 결과는 불행한 결말로 끝났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아마 노무현 당선자가 25일 청와대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그는 장막 속에 갇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쓴 소리를 할 만한 사람이 하나 둘씩 사라져서 일년쯤 지나면 주변도 모두 예스맨으로 가득 찰지 모른다.
/김수종 논설위원 s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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