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하철 방화 참사를 몰고온 '1080호의 비극'은 어처구니 없는 초기 대응으로 일관한 종합사령실과 기관사의 합작품으로 드러나고 있지만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경찰수사결과 사령실이 중앙로역 화재발생 사실을 알게된 시각은 오전9시55분. 2분전 발생한 화재로 역사에는 연기가 가득했지만 사령실은 역무원의 전화로 뒤늦게 화재를 감지한다. 3명의 근무자가 폐쇄회로TV 모니터를 '정상적으로' 지켜봤는지 의심가는 대목이다.
이후 사령실의 대처도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전 열차 중앙로역 진입시 조심 운전할 것"만을 지시했고 역사 진입을 앞둔 1080호를 따로 찾지도 않았다. 화재가 난 1079호와 교신했을 사령실이 왜 그 시각까지 상황파악을 못했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경찰도 이 부분을 해명하기 위해 지하철공사측에 "1079호 기관사와 사령실간 교신내용 제출"을 수 차례 요구했지만 공사측은 "없다"는 말만 되풀이, 의혹을 부풀리고 있다.
당시 교신내용을 보면 역사에 정차한 1080호는 재출발이 불가능했음이 드러난다. 기관사는 "급전됐습니다. 지금 바로 출발합니다"라고 사령실에 보고했다가 이내 "왔다갔다한다. 엉망입니다"라고 했다. 지하철 전기공급 시스템은 선로에 이상이 생기면 일단 자동 차단됐다가 14초 간격으로 3회에 걸쳐 재투입돼도록 프로그램돼 있다. 이상이 계속되면 이후 전기는 완전 차단된다. 따라서 기관사가 "엉망"이라고 한 것은 이 같은 시스템의 작동 결과였다. 지하철 전문가들은 "이 상황에선 재발차에 매달리기보다 즉시 승객들을 대피시켰어야 했다"고 말한다. 기관사나 사령실이 기본적인 시스템도 몰라 수백명의 목숨이 걸린 5분을 그냥 허비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후 기관사의 행적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교신에서 "엉망입니다"라는 말을 끝으로 최씨의 목소리는 사라졌고 사령실의 호출에도 응답이 없었다. 경찰은 이 부분과 관련, "교신에 문제가 있었다기 보다 최씨가 자리를 비웠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있다. 최씨도 경찰에서 "더 이상 사령실과 교신이 안돼 객차를 오가다 열차를 나와 지하 2층까지 갔었다. 그리고 다시 내려와 대피방송을 하고 문을 열었다"고 진술했다. 따라서 기관사가 10시께 재발차 시도를 포기한 후 혼자 빠져 나와 5분간 갈피를 못 잡고 역사를 헤맸을 가능성이 높다.
기관사가 다시 돌아와 문을 열었는지도 의문이다. 지하철공사에 따르면 1080호의 출입문은 1호 객실의 경우 문 1개만 열려있고 2∼6호 객실은 대부분 닫혀있다. 1호 객실의 열린 문도 전문가가 아니면 있는지 조차 모르는 '외부 개폐장치' 조작으로 열린 것으로 밝혀졌다. 최씨가 긴박한 상황에서 우왕좌왕하다가 1호객실 문만 외부서 열고 나머지 2∼6호 객실문은 열지 못한채 빠져 나왔을 가능성이 설득력을 얻고있다.
/대구=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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