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전을 밀어붙이려는 미국의 주변국 손목 비틀기가 본격화했다.미국은 특히 이라크 북부 진격에 전략적 요충인 터키 군 기지 이용을 놓고 경제적 지원을 당근으로 압박 공세를 가하고 있다.
들끓는 전쟁 반대 여론과 미국의 압력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된 터키 정부는 기지 제공 반대급부로 미국으로부터 최대한의 경제지원을 끌어내려 하고 있으나 그나마 미국측이 생각하는 지원액과 차이가 커 난감한 입장이다.
미국은 터키가 주장을 굽히지 않을 경우 현재 진행 중인 국제통화기금(IMF)의 터키 구제 금융 프로그램에도 압력을 행사하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비치고 있다. 2001년 이후 3년째 극심한 경기침체에 시달리고 있는 터키는 가뜩이나 IMF와 16억 달러에 달하는 추가 구제 금융 집행을 놓고 마찰을 빚고 있어 미국의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최근 터키 외무·경제 장관들은 워싱턴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 콜린 파월 국무장관 등과 경제지원에 대해 협의했으나 큰 시각차만 확인한 채 빈손으로 돌아왔다. 19일 압둘라 굴 터키 총리와 파월 장관의 추가 협상도 실패로 끝났다.
터키 정부가 요구하는 액수는 100억 달러 무상 지원과 200억 달러 장기 차관 등 모두 300억 달러 수준. 당초 920억 달러를 제시했으나 미국의 강력한 반대에 부닥쳐 대폭 물러선 금액이다. 그러나 미국은 터키가 마지노선으로 내놓은 이 요구마저 "지나치다"며 40억 달러 무상 지원과 차관 200억 달러 등 240억 달러 이상은 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미군 제4 보병사단이 터키로 반입하는 장비에 대해 터키 정부가 1억5,000만 달러의 세금을 물리려는 계획도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18일 미군의 터키 기지 사용을 승인하려던 의회는 투표를 무기한 연기했다. 집권 여당의 레셉 타입 에르도간 당수는 "다음 주까지도 의회를 열 계획이 없다"며 단호한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터키 정부가 기지 사용을 반대하거나 최대한 억제한다는 기본 방침 아래 미국과의 이견을 의도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고 보고 마냥 협상에 의존하지는 않겠다는 자세이다.
미국은 이라크 관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2차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프랑스에 대한 압박 강도도 점점 높이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19일 "유엔이 이번에도 이라크 무장해제에 실패한다면 기구 자체의 필요성을 의심받게 될 것"이라며 유엔에 대한 직접적인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프랑스에도 행동을 취하도록 압박할 준비가 돼 있다"며 2차 결의안에 무장해제를 위한 '최후통첩' 시한을 못박아 프랑스의 거부권 행사에 관계없이 군사작전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날 사우디 아라비아의 압둘라 왕세제를 비롯, 카타르 지도자 셰이크 하마드 빈 칼리파 알―타니, 하마드 빈 이사알―칼리파 바레인 국왕 등 걸프국 지도자들과 연쇄접촉을 가진 것도 유엔과 같은 다자무대가 아니라 양자 협상을 통해 난국을 타개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그러나 그동안 2차 결의안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던 러시아도 이날 이고리 이바노프 외무장관의 발언을 통해 "무력사용이 담긴 유엔 결의안은 해를 끼치는 것"이라며 거부권 행사 방침을 시사했다.
한편, 지난주 외무장관 회담에서 정상회담 일정 합의에 실패했던 아랍연맹은 20일 "다음달 1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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