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역기구(WTO)의 새로운 다자간무역협상(New Round)이 성공리에 마무리될 수 있을 것인가.최근 도쿄에서 개최된 WTO 비공식 각료회의의 결과는 뉴라운드의 전망이 매우 어둡다는 것을 새삼 확인시켜 주었다. 뉴라운드의 성공 여부를 점칠 수 있는 시험장이었던 이번 회의는 협상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각 나라와 지역의 심각한 의견차를 드러내는 무대가 되고 말았다. 특히 선진국과 개도국의 감정의 골만 더욱 깊게 하는 부정적인 결과를 도출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2001년 11월 카타르 도하에서 출범한 뉴라운드는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이라는 명칭으로 추진되고 있다. 농업, 비농산물, 서비스, 지적재산권 등 7개 분야에 대한 무역 자유화를 논의하는 이 협상은 우루과이 라운드(UR) 이후 새로운 국제 경제질서의 틀을 제시하게 될 다자간무역협상이다.
이번 비공식 각료회의는 3월말로 예정된 농업 협상 세부 원칙 확정 등 일련의 협상을 앞두고 입장 차이를 조율하는 등 분위기 탐색을 위한 시험무대였다.
초점은 역시 농업 분야였다. 미국 호주 이집트 등 농산물 수출국들은 모두 22개 국가 및 지역의 농업·통상 각료들이 참석한 농업 분야 토론에서 관세 대폭 인하를 골자로 하는 스튜어트 하빈슨 WTO 농업위원회 의장의 초안을 토대로 협상을 진행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농산물 수입국들은 "지나치게 수출국 위주"라며 초안을 강력하게 반대했다. 이 안대로라면 농산물 수입국의 농산물 생산 기반 자체가 무너지는 등 치명적인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이들의 판단이다.
결국 "하빈슨 초안을 협상의 토대가 아니라 교섭을 촉진하는 촉매제로 규정하자"는 가와구치 요리코(川口順子·일본 외무장관) 각료회의 의장의 중재안을 회의 참가국들이 양해하는 형식으로 농업 분야 토론은 봉합됐다.
WTO 농업위원회는 24일 스위스 제네바 WTO 본부에서 하빈슨 초안을 재검토, 3월 안에 제2차 초안을 제시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농산물 수출국과 수입국의 견해차의 간극을 메울 수 있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아 3월 말까지로 계획된 농업 협상 세부원칙 마련 일정도 불투명한 상황이 됐다.
이번 회의에서 돌출한 또 다른 복병은 의약품에 대한 특허권 완화 문제였다. 아프리카 등 개도국들은 인도적 차원에서 에이즈 치료제 등 의약품을 싼 값에 제조할 수 있도록 특허권을 완화해 줄 것을 호소했으나 미국 등 선진국들은 난색을 표시했다. 통상 전문가들은 이 같은 양상이 선진국에 대한 개도국의 불신감을 심화시켜 다른 분야의 협상에서도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WTO 회원국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개도국의 협조 없이는 교섭 진전은 생각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이 같은 대립으로 비농산품, 서비스, 환경 등 나머지 분야에 대한 논의는 충분하게 이루지지 못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현실적으로 가장 큰 어려움은 뉴라운드 타결까지 남은 시간이 매우 촉박하다는 것이다. 뉴라운드의 협상 기한은 2005년 1월 1일까지로 2년도 채 남지 않았다. UR이 타결까지 7년이 걸렸던 점을 고려하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간이다. 또한 농업 협상 세부 원칙 확정, 서비스 협상 1차 양허안 제출(이상 3월 말 기한), 비농산물 협상 세부 원칙 확정, 분쟁해결양해(DSU·이상 5월 말 기한), 이집트 비공식 각료회의(6월)와 제5차 WTO 각료회의(9월) 개최 등 눈앞에 닥친 일정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 지도 미지수이다.
이번 회의를 지켜본 전문가들은 "현재 뉴라운드는 매우 어렵게 진행되고 있으며 전망도 불투명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일본의 교섭은 경제 규모의 2%에도 못 미치는 농업에 의해 발목이 잡혀 있다."(로버트 죌릭 미 무역대표부 대표) 비공식 각료회의가 끝난 후 회의장은 생각이 다른 국가 및 지역에 대한 상호 비난이 난무했다.
/김철훈기자 chkim@hk.co.kr
■ 뉴라운드는
도하개발아젠다(DDA)는 2002년 초부터 세계무역기구(WTO)가 진행하고 있는 새로운 다자간무역협상(ROUND)의 명칭으로 이른바 뉴라운드의 구체적인 실천 방안의 성격을 갖고 있다.
전 단계인 우루과이 라운드(UR) 타결 이후에도 남아 있는 농업, 서비스 분야 등의 무역장벽을 제거하자는 취지로 1998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2차 WTO 각료회의에서 합의됐다.
2차 대전 후 많은 국가들은 새로운 국제 통상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여러 차례 다자간무역협상을 벌여 왔다. 최초의 라운드 격인 47년 1차 관세교섭은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을 낳았고 이후 세계는 UR까지 모두 8차례의 라운드를 통해 관세 인하와 무역자유화를 위한 교섭을 벌여 왔다.
다자무역협상에 라운드라는 명칭이 붙는 이유에 대해서는 해석이 엇갈린다. 초기 무역협상이 원탁 테이블에서 이루어진 데서 기인한다는 해석도 있으나 권투 경기와 같이 회를 거듭하면서 협상을 벌이기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보통 협상이 시작된 도시나 국가명을 붙여 부른다.
과거의 라운드들이 주로 선진국의 이익을 반영했다는 개도국들의 주장으로 DDA에는 라운드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으나 일각에서는 여전히 DDA를 도하라운드라고 부르기도 한다.
뉴라운드 협상방식은 여러 의제를 동시에 협의해 참가국 전원이 협상 결과를 모두 수용하는 일괄타결 방식이다.
7년 이상 걸렸던 UR 협상의 전철을 밟지 말자는 회원국들의 합의로 나온 결정이지만 협상 대상이 광범위한데다 각국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실제 협상은 시한인 2005년 1월 1일보다 더 길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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