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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하철 참사 / 교신내용으로 본 화재당시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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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하철 참사 / 교신내용으로 본 화재당시 상황

입력
2003.0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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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20일 공개한 사고직후 종합사령실과 전동차 기관사 간의 교신내용은 초기 대응이 얼마나 안이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1079호에서 불이 나 지하철역 구내가 한치 앞을 분간할 수 없고 반대편 선로에 도착한 1080호에도 불이 옮겨 붙는 상황에서 종합사령실 운전사령은 "상행선 차량은 정상운행"하라는 어처구니없는 지령을 내리고 기관사는 "빨리 조치 바란다"는 무책임한 말만 되풀이했다. 1079호에서 불이 난 9시55분 운전사령은 "중앙로 진입시 조심해 운전하라, 지금 화재가 발생했다"는 지령을 '담담하게' 알렸다.각 기관사들의 '알았다'는 대답이 전해지던 9시57분께 이미 중앙로역에 진입한 1080호 기관사 최상열(39)씨는 느닷없이 "단전입니까"라고 묻는다. 이에 운전사령은 "단전이니까 방송 좀 하고…"라는 무성의한 대답으로 일관하다 58분께가 돼서야 1079호 열차에 화재가 발생했다는 내용을 주지시킨다.

그러나 역시 대응은 "안내 방송 하시고…"에 그쳤다. 기관사 최씨는 "엉망입니다. 답답하니까 빨리 조치 바랍니다"는 불평섞인 말을 내뱉고 "중앙로 역인데 대피시킵니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여기에 대한 사령실의 조치는 "단전돼서 못 움직이잖아, 지금"이라는 엉뚱한 답변과 함께 예의 "그럼 일단 방송하시고"라는 지시뿐. 이어 상황이 반전됐는지 최씨는 "급전(給電)이 됐다"고 보고하고 운전사령은 "발차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급전은 잠시 상황이었을 뿐 최씨는 다시 "아, 미치겠네, 급전됐다 살았다 죽었다 엉망입니다"라는 말을 끝으로 9시59분께 사령실과의 교신에서 사라진다.

상황이 이런데도 종합사령실은 전동차에서 벌어진 상황을 파악하려 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10시께 "여보세요"라고 한차례 1080호를 찾은 운전사령은 1082호와 1077호 등 다른 기관사가 교신을 해 오자 거기에 응대하다 2분이 지난 뒤에야 전 열차를 상대로 "1080호 열차가 급전이 안된다"는 내용을 전파한다. 발화 이후 무려 7분 뒤에나 나온 "연기가 찼으면 승객들 승강장 위로 대피시키라"는 1080호를 상대로 한 듯한 운전사령의 지시는 허공 속에서 메아리쳤다. 이미 불은 1080호까지 뒤덮었고 캄캄한 역 구내에서 문도 열리지 않은 전동차에 갇힌 승객들의 머리 속엔 죽음의 공포만이 가득했다.

종합사령실이 중앙로 역사의 참사에 대한 대강의 상황이나마 파악한 것은 사고발생 10여분 뒤인 10시6분께. 운전사령은 "현재 반월당 신천간 하선단전으로 하선열차 정상운행이 안된다"며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챈 듯한 지시를 내린다. 그러나 이어 "상선열차는 정상운행하라"고 지시해 이 시각까지 사태를 완전히 꿰고 있지 못함을 자인하고 있다. 운전사령이 상황의 전모를 파악하고 전 열차에 "역에 도착한 열차는 사령지시를 받고 발차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은 사고발생 후 무려 22분이 지난 뒤였다.

/대구=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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