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8시30분 서울 지하철 4호선 동대문운동장역. 지하 3층 승강장에 안산 방향 전동차가 서자 승객들이 우루루 내려 에스컬레이터 앞으로 몰려들었다. 곧바로 반대편으로 당고개행 전동차가 도착했고 다시 승객이 쏟아져 나와 길다란 줄을 만들었다.4호선 말고도 2호선, 5호선 등 3개 노선이 만나는 이 곳에서 만약 대구와 같은 방화가 일어난다면 상상할 수 없는 대참사가 빚어질 가능성이 높다. 4호선역 구역만 해도 이용객이 하루 36만 여 명. 그런데도 매일 출퇴근하는 사람마저 헷갈릴 정도로 역 구내는 복잡하다. 지하 3층 4호선 승강장의 경우 지하 1층으로 직행하는 계단과, 지하 2층의 2호선 및 지하 5층의 5호선 승강장으로 갈 수 있는 계단이 있는데 길 잃고 엉뚱한 곳으로 나가는 승객이 한 둘이 아니다. 회사원 김경환(34·서울 도봉구 쌍문동)씨는 "사고가 나면 많은 승객이 우왕좌왕할 것"이라며 "나도 암흑 속에서 통로를 찾을 수 있을 지 자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같은 시각 부산의 서면역도 출근 길 시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1,2호선이 만나는 이곳은 부산 지하철 승객의 4분의1(20만 명)이 이용하는 부산 제1의 혼잡역. 승객 정영포(41·부산 남구 용호동)씨는 "내리고 타느라 매일 몸싸움을 벌인다"며 "출퇴근 시간만이라도 안전 요원을 배치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999년 10월 개통된 인천 지하철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건설된 지 얼마 안돼 시설과 장비가 우수하지만 안전관리 및 소방방재시스템은 다른 지역 지하철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참사가 빚어진 곳은 대구지만 이처럼 서울 등 다른 대도시의 지하철에도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서울 1호선 종각역에서 내린 김진환(36·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씨는 "계단이 좁아 3명만 함께 걸어도 어깨가 부딪힐 정도"라고 지적했다. 이곳 종각역을 비롯, 1∼4호선은 지하역사 95곳중 36곳만 배연시설이 있으며 특히 1호선은 한곳도 배연시설이 없다. 김씨는 "비상등이 띄엄띄엄 설치된 데다 조도가 낮아 연기가 차면 제 역할을 할지 미지수"라며 "역이 깊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의 지적처럼 승강장이 깊어지는 것은 피해는 키우고 구조는 더디게 할 가능성이 높다. 승강장이 깊으면 지하로 오가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 서울 8호선 남한산성역은 승강장이 땅속 60m에 위치해 있을 정도다.
서울 충무로역에서 만난 한 승객은 대구 참사 이후 지하철의 장식물도 달리 보인다고 말했다. 전에는 충무로역의 우레탄폼 동굴장식이 멋있게 보였는데 지금은 유독가스를 뿜어낼 것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면서 꼴도 보기 싫어졌다고 했다. 그는 "전동차 안은 불에 잘 타는 아크릴판 상업광고로 도배질돼 있고 출입문 수동 조작법을 적은 안내문은 손바닥만하게 붙어있다"며 "사고 발생시 빨리 빠져나가기 위해 전동차 문 가까이에 앉거나 선다"고 말했다.
승객들은 노선마다 환승역 관리 주체가 달라 효율적 활용에 지장을 준다는 사실에도 불만이 많다. 2호선 충정로역 시설분소의 한 직원은 "동대문운동장역 2호선엔 배연장치가 1개 설치돼 있지만 4호선, 5호선에는 몇 개나 설치돼 있는 지 모른다"고 털어놓았다.
/김동국기자 dkkim@hk.co.kr
김창배기자 kimc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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