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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하철 참사/ 희생자·생존자 눈물겨운 사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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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하철 참사/ 희생자·생존자 눈물겨운 사연들

입력
2003.0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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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 날에 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교." "돈 아낄라꼬, 받는 전화만 쓰디마는 전화 한 번 못하고 와 죽었노…."대구지하철 참사 희생자의 신원이 속속 밝혀지면서 눈물겨운 사연들이 하나 둘씩 전해져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참변을 당한 일가족 3명, 병원을 가다 함께 생을 마감한 노부부, 전화비를 아끼려 휴대폰을 수신 전용으로 설정해놓았다가 구조 요청 한 번 못하고 화를 당한 '똑순이 사회초년병' 등은 모두 우리 곁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던 '보통 시민'들이었다.

봄방학 맞아 고향가다 참변

경남 거제시 삼성조선소에서 근무하는 지모(45·경남 거제시)씨는 이번 참사로 어머니 최금자(65)씨와 둘째 딸 정윤(15)양을 잃고 말았다. 초등학교 졸업 후 대구로 전학을 보내 동원중에서 공부하던 딸이 봄방학을 맞아 할머니와 함께 고향집에 가려고 지하철을 탔다 변을 당한 것. 지씨는 "사고 전날 밤만 해도 어머니가 전화로 '내일 집에 손녀와 함께 내려간다'며 좋아하셨는데 사고 당일 오전 10시20분께 전화를 걸어 '열차에 불이 났다. 살아나갈 수 없을 것 같으니 꿋꿋하게 살아라'고 말씀하셨다"면서 "그 말씀이 유언이 됐다"고 통곡했다. 서모(33)씨는 처제의 대학 졸업식이자 외아들의 생일날인 사고 당일, 장모와 아내, 아들 등 일가족 3명을 모두 잃었다. 부인 강은숙(26)씨는 아들 민수(3)군, 친정 어머니 박춘지(58)씨와 함께 여동생 정숙(24)씨의 대학 졸업식에 참석했다가 대구 시내에서 아들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희생됐다. 다행히 정숙씨는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지만 3대가 전동차 안에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서씨는 넋을 잃은 표정으로 대구 배성병원에 안치된 일가족 3명의 영정만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열흘전 입사, 출근길

박채환(朴菜煥·68)씨는 당뇨병으로 신음하던 부인(65)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으로 데리고 가다 부인과 함께 숨졌다. 가족들은 "교육 공무원이던 아버지가 2년 전 퇴직한 뒤 몸이 불편한 어머니를 위해 항상 시장도 같이 가고 병원도 데리고 갔었다"며 "자식들이 직접 모시고 갔어야 했는데…"라며 오열했다.

이동석(24·경북 문경시)씨는 어머니 고명순(50)씨를 병원으로 모시고 가다 불이 나자 아비규환 속에서 떨어져 나간 어머니가 전동차 안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불길에 뛰어들었다가 화상을 입고 중태에 빠졌다. 목숨을 건진 어머니 고씨는 "차라리 못난 내가 다쳤어야 하는데, 제발 동석이가 깨어나야 할텐데…"라며 병석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대구의료원에 시신이 안치된 석현숙(石賢淑·21)씨는 수신전용 휴대폰을 사용하는 바람에 가족 등에게 구호 전화조차 못하고 짧은 생을 마쳤다. 5일 대구미래대를 졸업한 석씨는 사고 당일 아침, 열흘 전 어렵게 입사한 회사로 출근하기 위해 경산에서 시내로 가는 길이었다. 지씨의 친구들은 "현숙이가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을 걱정하며 휴대폰을 수신자 전용으로 바꿨다"며 "요금을 조금이라도 절약하려고 한 게 오히려 화가 됐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대구=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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