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잠실에서 시청까지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회사원 선모(31)씨는 19일 아침 전동차에 오르자마자 출입문 바로 옆에 버티고 섰다. '혹시 대구처럼 불이 나도 먼저 빠져나갈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평소 눈여겨 보지 않던 차내 소화기와 '출입문 수동개폐기함'의 위치도 유심히 확인했다. 선씨는 "어젯밤 지하철에 갇혀 죽는 악몽으로 잠을 설쳤다"며 "전동차 안에서 나처럼 두리번거리는 승객이 눈에 많이 띄었다"고 전했다.지하철 이용 승객들이 '지하철 공포 신드롬'에 시달리고 있다.
교사 최모(42·여)씨는 이날 친구와의 약속 장소로 가기 위해 을지로행 지하철2호선을 탄 뒤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했다. 한 허름한 옷차림의 남자가 가방 속에 손을 집어 넣고 무언가를 만지작대고 있었던 것. "30분 내내 '혹시 휘발유통을 꺼내 불을 붙이는 것은 아닌가'하는 공포에 시달렸다"는 최씨는 "돌아가는 길에는 버스를 타야겠다"고 말했다.
모방범죄 발생 가능성이 커지면서 지하철 공포 신드롬은 더욱 확산됐다. 특히 이날 서울 도시철도공사에 "종로쪽 지하철을 폭파하겠다"고 전화로 협박했다가 붙잡힌 강모(50)씨가 "대구 지하철 사건을 보고 술김에 전화를 했다"고 말한 사실이 전해지면서 시민들의 공포감은 더욱 고조됐다. 경찰 관계자는 "신문 판매권을 얻지 못해 홧김에 지하철 폭파를 생각했다는 강씨처럼 자신의 불만을 불특정 다수에게 폭발시키는 모방 범죄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지하철 공포 때문에 지하철 이용객도 크게 줄었다. 대구 지하철공사는 이날 1호선 28개 역 중 22곳을 두 구간으로 나눠 운행을 재개했지만 이용객은 사고 발생 전 하루 평균 이용 승객 15만명의 20%선에도 미치지 못했다. 서울, 부산 등 지하철이 운행되는 도시의 상황도 마찬가지. 서울 지하철공사 관계자는 "19일 아침의 경우 평소보다 30% 가량 승객이 준 것 같다"며 "경찰과 공익근무요원 등이 비상경계활동에 나섰지만 아직 시민들은 지하철 이용에 안심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대 의대 신경정신과 권준수(權俊壽) 교수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테러 공포는 사회의 활력을 앗아가는 결정적 요인"이라며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는 대책이 빨리 마련되지 않으면 지하철 공포 신드롬은 더욱 확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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