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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미넴의 8마일 / "분노는 나의 힘… 짓밟혀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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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미넴의 8마일 / "분노는 나의 힘… 짓밟혀도 좋아"

입력
2003.0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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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디트로이트에서 자랐으며, 랩 배틀에 참가했기 때문에 피부색이 늘 시비거리였다. 나는 끓는 솥 가운데 있었다. 내게 피부색으로 시비 거는 놈이 있으면, 나는 그들 면상에 그걸 돌려줬다."(에미넴)영화 '8마일'(8 Mile)은 캘리포니아의 웨스트 코스트 랩이나 뉴욕의 이스트 코스트 랩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진짜 '양아치' 힙합의 무대인 디트로이트를 배경으로 한다. 몰락한 산업 도시를 메운 흑인들, 그들 분노의 분출구는 랩이었다. 때문에 백인 래퍼란 그들에게는 '꼴같잖은 녀석'이었다.

영화는 미국에서 '흑인에게도 멸시당하는 백인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지미, 일명 래빗(에미넴)의 엄마(킴 베이싱어)는 아들의 동창과 트레일러에서 동거를 하며 그가 자동차 사고 보험금을 탈 날만을 기다리지만 끝내 버림받는다. "네 엄마 따먹을 거야"란 농담을 던지는 친구들 사이에서 래빗은 그저 한심한 백인일 뿐이다. 자동차 공장에 다니며 밤에는 랩 경연(랩 배틀)에 참가하지만, 야유를 퍼붓는 흑인들 앞에서 입도 달싹하지 못하고 무대에서 내려온다. "우, 머저리"라는 비아냥은 늘 그를 따라 다닌다.

퓨처, 솔, DJ Iz, 체다 밥 등 흑인 친구들과 랩 음반을 낼 날을 기다리며 래빗은 알렉스(브리트니 머피)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음반을 내주겠다며 부추기던 친구는 알렉스까지 농락하고, 다시 랩 배틀의 시간이 다가온다.

에미넴의 불우한 어린 시절과 그의 다혈질적 성격을 밑줄거리로 삼아 극적 요소를 가미한 '8마일'은 백인 래퍼의 평범한 성공담이길 거부하는 멋진 결말이 압권이다.

"그래, 난 가난한 백인이다. 니들에게 얻어 터지고, 여자 친구도 뺏겼다. 그래 그게 나다"라며 자신이 '쓰레기'임을 외치는 마지막 랩은 '랩은 쓰레기'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도 랩의 매력을 전달하기에 충분하다.

'8마일'은 미국 개봉 당시 역대 18세 이상 관람가 영화 중 2위라는 좋은 성적을 올렸다. 브리트니 스피어스 주연의 '크로스 로드'처럼 유명 가수의 이미지를 우려먹는 영화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LA 컨피덴셜'의 감독 커티스 핸슨의 노련한 연출과 얼굴 어딘가에 칼날을 숨겨놓은 듯한 에미넴의 독특한 분위기 덕분이다. "나 뉴욕으로 떠날 거야"라는 말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는 알렉스 역의 브리트니 머피의 퇴폐미도 눈에 띈다. 마약에 찌들고, 희망이라곤 없는 여자가 치명적으로 매혹적일 수 있다는 걸 깨우쳐 준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의 제니퍼 제이슨 리에게는 못미치지만. '8마일'은 디트로이트의 빈민가 경계인 '8마일 로드'에서 따왔다. 21일 개봉. 18세 관람가.

/박은주기자 jupe@hk.co.kr

● 왜 에미넴인가

에미넴. 31세. 본명 마샬 브루스 마더스 3세. 그를 두고 '그저 그렇다'는 평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역겨워 하거나 숭배하거나. 외설적인 골반춤으로 경멸을 받았던 엘비스 프레슬리가 얼마 지나지 않아 대중의 우상이 됐듯, 에미넴은 외설적이고 공격적인 가사로 전세계 10대와 20대를 열광적인 팬으로 만들었다. "음반 팔아 먹으려고 랩에 욕을 안 넣는다"며 흑인 래퍼 윌 스미스를 공격하고, 하드코어 그룹 림프 비즈킷에게 "후레자식"이라고 욕을 퍼붓는다.

미국 미주리주 캔사스에서 열 다섯 살 소녀의 몸에서 태어난 에미넴은 아버지가 6개월 만에 떠난 후 어머니와 살았다. 디트로이트에서 어머니와 흑인 거주지역에 살았던 에미넴은 성격이 원만하지 못해 2, 3개월 간격으로 학교를 옮겼고, 흑인 소년들에게 얻어 맞아 10일간이나 혼수상태에 빠진 적도 있다. 1998년 싱글판 '더 슬림 셰디'로 본격 데뷔한 에미넴은 방송을 듣고 매료된 '닥터 드레'의 지원으로 6시간 만에 정식 앨범을 녹음해 발표, 본격적인 스타덤에 올랐다. 첫 앨범은 미국에서만 800만장이 팔리며 '백인 래퍼' 시대를 열었다. '에미넴'이란 이름은 열 일곱 살 때 썼던 이름 'M&M'을 변형한 것.

백인 래퍼면서 인기를 끄는 이유는 그가 '쓰레기'를 자처하기 때문. "마약하지 마라. 함부로 섹스하지 마라. 주먹 쓰지 마라. 그건 내가 다 한다." 잘생긴 백인 청년의 이런 주장은 '쿨'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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