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원작을 훼손한 건 아닌가요?"장진영(29)은 시사회와 연이은 인터뷰로 긴장한 탓인지 피곤이 내려 앉은 표정이었지만 '국화꽃 향기'의 원작자인 소설가 김하인(41)을 만나더니 화색이 돌았다. 첫 만남이지만 둘은 여주인공 희재(원작에서의 이름은 미주)의 성격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나누느라 인사는 뒷전이었다. "소설에서는 술 담배도 하고 더 활기찬데 그렇게 표현하면 동정표를 받지 못할 것 같아 조금 쳐냈어요."(장진영) "진영씨의 활발한 모습이 좋아 보이던데요."(김하인) "그래서 선택했어요. 다른 멜로와 차별이 되니까 좋았어요."(장진영)
죽이 잘 맞는 친구처럼 보였다. 원작과 영화의 차이를 함께 짚어가면서 수다를 쏟아냈다. 두 사람은 슬플수록 연기자는 슬픈 표정을 짓지 않아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김하인은 "웃음으로 슬픔의 바다를 건너야 한다"고 했고, 장진영도 그런 점에서 '국화꽃 향기'가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대학 동아리 시절을 더 재미있게 만들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고 했다.
장진영은 어느 영화보다 진통이 컸다고 했다. "욕심이 컸나 봐요. 감정의 기복도 심하고, 10년이라는 세월 속에서 마음의 흐름을 보여줘야 하는 역할이었기에 부담도 컸어요. 고생도 많이 했죠. 경남 통영 앞바다 매물도에서 기절한 채 5m 물 속에 가라앉는 장면을 찍는데 해파리가 미친 듯이 물어 뜯더군요." 시사회를 앞두고선 '내내 손에 진땀이 날 정도'였다. "보통 영화를 끝내면 확신이나 만족감이 들었는데, 이 영화는 참 다르더라구요."
시나리오를 먼저 본 뒤 책을 읽었다는 장진영은 무엇보다 대사가 마음에 쏙 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소설의 좋은 대사들을 드라마 '가을 동화'에서 먼저 써서 아쉬워요. 어떻게 가슴을 후벼 파는 대사를 쓸 수 있는지 놀랐어요." 그 칭찬을 김하인은 "하나라도 잘해야 살아 남을 수 있죠"라는 말로 받았다. "대구대 특수교육과에서 뇌성마비환자와 정서장애 환자를 전공했어요. 그래서 남들에게 '슬픔이 전공'이라고 말해요."
두 사람은 '미인' 논쟁으로 자리를 마무리했다. "미인 앞에서는 이야기를 잘 못해요."(김하인) "그럼 제가 미인이 아닌가 봐요. 얘기를 잘 하시는 걸 보니."(장진영)
/이종도기자 ecri@hk.co.kr
■국화꽃 향기
"난 집에 못 갈 것 같아…. 인하씨 혼자 가지 않아서 다행이다. 옆에 재인이 두고 가니까 괜찮지?"
위암 환자인 희재(장진영)가 아이를 낳고 죽음을 맞으면서 남편 인하(박해일)에게 남기는 마지막 대사다. 사랑하는 사람과 죽음으로 헤어지는 일만큼 슬픈 일이 또 있을까. '국화꽃 향기'(감독 이정욱)는 콧날을 시큰하게 하는 최루성 멜로영화다.
책 동아리에 가입한 신입생 인하는 회장인 선배 희재의 머리칼에서 국화꽃 향기를 맡는다. 그 뒤로 그녀는 7년 동안 오직 희재만 바라본다. 그러나 교통사고로 약혼자를 잃은 희재는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한다. 라디오 PD가 된 인하는 가명으로 보낸 엽서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불치병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다는 내용은 상투적이다. 1989년부터 2003년, 대학 시절부터 30대 중반까지의 시간은 두 배우가 소화하기에 벅차 보인다. 그러나 이 영화는 먼저 슬픔에 취해 관객에게 울음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배우들의 연기는 과장되게 한 발 앞서가는 법이 없고, 감독 역시 서둘러 슬픔의 복판으로 나가지 않는다.
"우유도 자기가 타야 돼. 아이에게 숫자 가르치는 건, 나 성질 나빠서 못할 것 같아." 경남 통영 앞바다를 바라보며 그네에 나란히 앉은 희재 부부가 죽음과 삶을 준비하는 장면은 목이 멘다. 차곡차곡 쌓아가던 슬픔은 인하가 희재를 목욕시켜주는 장면, 희재가 "바로 앞에 있는 것도 못 찾는데, 손톱깎이는 누가 챙겨주지?"라고 묻는 대목에서 정점을 이룬다. 28일 개봉. 전체관람가.
/이종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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