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윤리가 핵심 경쟁력이다." 미국에서 존경받는 10대 기업의 2001년 주가 수익률은 평균 9.7%로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의 500대 기업 평균 수익률(-11.9%)을 크게 앞질렀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지난해 말 미국을 강타했던 엔론사 회계 부정 사건과 최근 SK그룹의 부당내부거래 검찰 수사 등은 기업 윤리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경쟁력의 필수 요소임을 일깨워주고 있다.
국내 최초로 다자간 기업윤리 포럼 출범
우리 재계에 윤리 경영을 본격 제기하는 최초의 다자간 포럼이 출범했다. 서울대 조동성(趙東成) 경영대학장과 유한킴벌리 문국현(文國現) 사장을 공동 대표로 한 '윤경(윤리가 경쟁력이다) 포럼'은 19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 2층 중회의실에서 발족식을 갖고 "윤리 경영이 기업의 핵심 경쟁력이 되는 시대가 도래했다"며 "윤리경영을 통해 기업의 경쟁력을 키우고, 나아가 국가 경쟁력을 향상시킬 것"을 제안했다.
윤경 포럼에는 재계, 학계, 관계, 언론계 등 각계 인사 25명이 참가, 앞으로 윤리경영을 통해 기업 경쟁력을 높인 사례 발굴 윤리 경영의 평가 기준 작성 및 보급 자기진단 프로그램 개발 등을 통해 윤리 경영의 혁신 기반을 마련키로 했다. 조동성 공동 대표는 "국가 경제의 발전 단계에 따라 경쟁력의 원천이 바뀌게 된다"며 "이제 선진국 진입을 눈 앞에 둔 우리 경제는 윤리 경영, 투명 경영을 통한 경쟁력 강화를 추진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세미나 기조 연설 및 주제 발표
포럼 발족식에 뒤이은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은 한결같이 "사주와 최고경영자(CEO)의 강력한 의지와 제도적 뒷받침이 없이는 윤리 경영이 구두선에 그칠 것"이라며 "윤리가 기업의 생명을 좌우한다는 발상의 전환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강철규(姜哲圭) 부패방지위원장은 '경제발전과 부패방지'라는 제목의 기조연설에서 "엔론 사태 이후 기업 가치의 원천에 '시장과 사회로부터의 신뢰'가 추가되고 있다"며 "기업 신뢰성의 관건은 윤리 경영"이라고 말했다. 강 위원장은 "우리나라의 경우 윤리경영 전담 부서를 설치, 운영하고 있는 기업의 주가 상승률은 최근 4년간 46.3%로 나타나, 윤리 헌장을 제정하지 않은 기업의 주가상승률(22.1%)의 2배가 넘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2002년 국제경영개발원(IMD)의 '국가경쟁력 조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기업에 대한 신뢰도는 조사대상 49개국중 47위를 기록할 정도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전경련은 '2002년 기업윤리실태 조사 보고서'에서 "대부분의 기업이 '윤리 강령' 문서의 제정에 그칠 뿐, 강령의 실천과 운영을 위한 전반적 이행 시스템 구축에는 소홀히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 위원장은 정부의 역할과 관련, "정부 관련 부처에서는 기업의 윤리경영 실천을 유도, 확대하기 위해 규제보다는 인센티브(유인책) 제공에 역점을 둬야 한다"고 밝혔다.
대한상의 김효성(金孝成) 상근 부회장은 '윤리 경영과 세계화: 윤리 라운드' 제하의 발표문을 통해 "기업의 윤리 경영이 우리 사회의 새로운 화두로 부각되고 있다"며 "윤리경영에 실패하는 기업은 시장의 신뢰를 잃게 되고, 결국 기업의 운명마저 위기에 처하게 된다"고 밝혔다.
김 부회장은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이전에는 주주와 소비자들이 '마음씨 좋은 후견인'이었으나 이제는 사소한 흠까지도 까다롭게 따지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례로 "미국 기업들은 소비자의 50% 정도가 기업 이미지를 보고 구매 행동을 결정한다고 보고 있고, 기업 이미지는 기업의 시민 사회에 대한 관계에 의해 60% 이상 결정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윤리경영 풍토가 뿌리를 내리려면 "오너와 최고 경영자가 윤리 경영을 도덕론으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윤리경영 없이는 기업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자각 하에 강력한 실천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CEO와 윤리 경영'을 주제로 발표한 유한킴벌리 문 사장은 "회사마다 준법 감시인과 관련 부서를 두고 있지만 기업의 큰 범죄는 주로 사주 또는 대주주, CEO 등에 의해 저질러진다"며 "기업의 지도층이 과거에 누렸던 특혜와 잘못된 관행의 유혹에서 벗어나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문 사장은 또 "최고경영자를 뜻하는 CEO(Chief 'Executive' Officer)가 이제는 최고윤리자(Chief 'Ethical' Officer)라는 새로운 차원의 CEO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종합 토론
포럼 발족식과 기념 세미나는 '우리의 다짐'이라는 윤경 포럼 발족 선언문 선포에 이어 기조연설, 주제발표, 종합토론 순으로 4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종합 토론에서 참가자들은 '왜 윤리 경영이 필요한가', '윤리 경영이 기업 경쟁력에 도움이 될 것인가' 등 근본적인 이슈들을 논의했다.
패널로 참석한 김진태 판코(PANKO) 부회장은 제일은행에서 일본계 호리에 행장과 근무했을 때의 경험을 얘기하며 "윤리 경영이라는 측면에서 우리 기업도 선진 기법의 99%를 알고 있지만 다른 것은 1%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들은 실천의지를 가지고 있고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 중요한 차이"라고 말했다. 김 부회장은 따라서 "사주와 최고경영자의 실천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 참석자가 "회사를 깨끗하고 정직하게 운영하다 보면 손해를 보는 정도가 아니라 생존이 위협당할 수도 있다"며 "개별 기업에 그런 위험을 받아들이면서 윤리경영을 펴라는 것은 비현실적이지 않은가"라고 질문을 던져 활발한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어떻게 하면 윤리 경영 풍토를 정착시킬 수 있을까'라는 실천의 문제에 대해 많은 참석자들은 "윤리 경영을 실천하기 가장 어려운 위치에 있는 사주, 대주주, 최고경영진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며 '솔선수범론'을 제기했다. 한 참석자는 이와 관련, "정부에서 윤리 경영을 잘 하는 기업에 대해 정책적으로 여러 가지 혜택을 주어야 하고, 특히 공기업에서 먼저 윤리 경영이 이뤄지는 것이 민간 기업으로 확산되는데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한 패널은 "과거의 비윤리적인 관행과 단절하기가 쉽지 않은 우리 기업의 현실을 감안해, 기업들이 겁 먹지 않고 잘 따라올 수 있도록 배려하면서 윤리 경영을 정착시켜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종합토론을 통해 참석자들은 윤리적 기업 풍토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기업, 정부, 시민사회의 다자간 논의와 합의가 긴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윤순환기자 goodman@hk.co.kr
■조 동 성 서울대 경영대학장 윤경포럼 공동대표
"윤리경영을 잘 하는 기업이 성장성도 높습니다."
윤경포럼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서울대 조동성(趙東成·사진) 경영대학장은 윤리경영이 이제 '부담되지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 학장은 올해부터 서울대 경영대에 기업윤리 강의를 새롭게 개설하기도 했다.
- 윤경포럼을 만들게 된 계기는.
"국가경쟁력 보고서를 만들어 오면서 윤리경영이 국가경쟁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우리 나라도 이제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발전해 가는 시기인 만큼 윤리경영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고 생각해 윤경포럼을 발족하게 됐다."
- 최근들어 윤리경영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이유는.
"한 나라의 경제가 개도국→중진국→선진국의 순서로 발전한다고 볼 때 그 발전과정마다 필요한 경쟁력의 원천은 따로 있다. 개도국 시절에는 값싼 노동력과 선진국으로부터의 자본 유입이 중요하며, 중진국으로 넘어가는 단계에서는 생산관리시스템의 효율성이 중요해진다.
여기서 선진국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우리기업들도 선진 기업들이 갖춘 조건들을 충족시켜야 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윤리경영이다. 시대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전세계적으로 사회나 경제 분야에 투명성이 강조되고 있다. 이는 인터넷의 보급 등으로 정보가 널리 공개됐기 때문인데,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기업 윤리가 강조돼야 한다."
- 윤리경영이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최근 윤리를 갖춘 기업이 성장성과 이익도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충실한 제품을 제공하기 때문에 브랜드 가치가 높아지고, 작은 잘못을 소홀히 다루지 않아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사태를 미리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월드컴, 엔론 사태 등은 윤리경영을 중시하지 않았을 때 어떤 최악의 사태가 올 수 있는지를 확연히 보여주는 사례다."
- 우리 기업의 윤리경영 수준을 평가한다면.
"현재 우리나라 기업의 윤리기업 수준에 대해 산업정책연구원에서 평가 모델을 개발 중이다. 올해 안에 이를 적용하여 각 개별 기업당 윤리경영 측정 결과를 올해 11월 정도에 발표할 예정이다."
/최진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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