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6일 뉴욕타임스 인터넷판에 흥미있는 기사가 하나 실렸다. 요약하자면 미국의 젊은 여성들이 자신의 몸매를 있는 그대로 당당히 내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20세기 내내 마른 몸매가 여성의 이상적인 체형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가히 혁명적인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무리한 다이어트로 죽음에까지 이르는 여성들의 소식이 여전히 끊이지 않는 이 때 이들의 자신감은 과연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1월 27일자 타임지의 기사에서 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옷은 물론 가구, 자동차, 의료기구에 이르기까지 뚱뚱한 사람들을 겨냥한 온갖 상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미국인의 65%가 과체중인 현실이 그 바탕을 마련해 주었다. 이처럼 상품의 세계가 열렬히 구애를 퍼붓고 있으니 뚱뚱한 사람들의 자신감이 상승한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리라.
임계점(critical point)이라는 말이 있다. 원래 물리학의 용어로서 어떤 물질이 하나의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바뀌는 경계지점을 이르는 것이다. 여기에서 파생되어 마케팅이나 사회과학에서는 의미있는 다수(critical mass)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한다. 어떤 결과를 낳는 데 의미있는 효과를 미칠 수 있는 사람의 수가 바로 의미있는 다수이다. 예를 들어 전화는 통신수단이므로 더 많은 사람들이 가입할수록 효용이 커진다. 맨 처음 전화에 가입한 사람은 사실 아무 쓸모도 없는 것을 산 것이다. 그러나 가입자가 늘수록 전화의 효용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다. 이처럼 전화의 보급이 어느 단계에 이르러 효용이 폭발적으로 커지기 시작할 때 의미있는 다수가 형성되었다고 얘기한다.
결국 문제는 수이다. 뚱뚱한 사람의 수가 일정 범위를 넘어서자 몸매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이 바뀌기 시작하듯이 수는 사람들의 태도를 변화시킬 힘을 지니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상품의 영역이 그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최근 우리 사회의 문화변화에서도 수의 힘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10대의 세대 문화가 폭발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부터이다. 재미있는 것은 5년마다 조사되는 통계청의 인구조사에서 1975년에 전체 인구 중 10대의 구성비율이 최고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이런 현상은 1985년까지 지속되다가 1990년 조사부터 20대가 10대를 추월하기 시작한다. 다시 한 번 흥미롭게도 이 시기는 신세대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한 때와 일치한다. 1985년까지 10∼20대와 현저한 차를 보이던 30대의 비율은 1990년부터 상승하기 시작해 1995년에 마침내 10대의 비율을 넘어서며, 2000년 조사에서는 30대가 전체인구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그렇다면 1995년 SBS 드라마 '옥이 이모' 이후 30대를 겨냥한 문화상품들이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30대, 나아가 40대의 문화욕구는 그들의 비중에도 불구하고 아직 대중문화계의 충분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당장 텔레비전 방송은 여전히 10대를 겨냥한 문화상품들로 도배를 하고 있다. 어느 분야보다도 문화는 예민한 감각을 갖춰야 하는 분야라고 한다면 이는 우리 문화의 생산자들이 너무나 무딘 감각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흔히 21세기는 문화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거기에 대한 대비가 제대로 되어 있는가? 불행히도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1980년대에는 5년쯤 늦게 문화상품을 만들었어도 별 문제가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요즘과 같은 속도의 시대에 그건 너무 늦지 않을까? 문화생산자들이 여전히 낡은 관습을 버리지 못하는 한 앞으로도 전망이 좋아질 조짐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정 준 영 동덕여대 교양학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