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 시위대의 규모라고? 핵심 그룹의 의견을 받아들여 정책을 결정할 뿐이오."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이라크 전쟁 반대 시위에 대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첫 반응은 '나의 길을 가련다'는 선언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18일 지난 주말 전 세계 주요 도시에 모인 수 백 만 명의 반전 시위대를 향해 자신의 개전 의지를 바꿀 만한 변수가 되지 못한다고 응수했다. 그는 "민주주의는 아름다운 것이고 사람들은 그들의 견해를 표시할 수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세계의 일부가 사담 후세인(이라크 대통령)이 평화의 위협이 아니라고 하지만 나는 정중하게 이와는 견해를 달리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안보 역할론'으로 반전(反戰)의 예봉을 피했다. "지도자의 역할은 안보, 특히 국민의 안보에 토대를 두고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라며 "전쟁은 최후의 수단이지만 국가 안보 위협에 직면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은 최악의 선택이 될 수도 있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적어도 겉으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던 반전 시위가 부시의 입에 오르내렸다는 것은 상황이 상당히 고민스럽다는 것을 입증한다. 반전 시위는 이라크를 '응징'하기 위해 국제사회의 지원을 얻으려는 미국의 입장을 혼란으로 이끌고 있다. 애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은 부시의 입장을 부연해 설명하는 가운데 반전 시위의 의미를 축소하려고 애썼다. 부시의 당혹감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플라이셔 대변인은 "최근 시위는 1983년과 같은 것"이라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당시 서독에 미사일을 배치한 것에 반대하는 시위를 끄집어냈다. 그는 "힘을 통한 평화의 결과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또 미국이 2차 대전에 뛰어들 때도 반전 시위가 있었다며 "대중 시위가 항상 그들이 생각하는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부시의 고민은 갈수록 국내외에서 반전 기류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미국은 이미 항공모함을 비롯해 15만 명 병력을 걸프 지역에 배치하는 등 총공격 준비를 마쳤다. 부시 대통령은 불과 한두 달 전만 해도 금방이라도 공격 단추를 누를 것으로 예상돼 왔다. 그러나 안전하게 국제사회의 지지를 안고 이라크를 치려 했던 미국의 전략이 설득 작업 난항으로 지지부진해졌다. 시간을 끌수록 국제사회는 미국으로부터 등으로 돌리는 형국이다.
미국은 유엔의 이라크 관련 2차 결의안 처리 수용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할 계획이다. 미국 언론들은 정부가 늦어도 다음 주 초 새 결의안 초안을 안전보장이사회에 제출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표면상 사찰 연장 요구를 수용한 것으로 보이지만 전쟁을 피하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 공격의 명분을 더욱 공고히하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플라이셔 대변인은 "새 결의안은 간략한 결의로 길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2차 결의안이 이라크에 대한 최후통첩성 문구를 담게 될 것임을 시사했다. 그러나 프랑스와 러시아, 중국 등 거부권을 가진 안보리 상임 이사국들이 사찰 연장을 지지하고 있어 2차 결의안 승인 여부는 불투명하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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