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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하철 방화 참사 / 사고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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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하철 방화 참사 / 사고 순간

입력
2003.0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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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전 9시29분 대곡역을 출발한 대구 지하철1호선 1079호 전동차(기관사 최정환·33)는 열다섯번째 역인 중앙로역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여느 때처럼 운행이 순조로웠다. 자리가 없어 서 있는 승객도 있었지만 그리 붐비지 않았고 연착도 되지 않았다. 전동차는 객차가 6량에 불과했다.그러나 전동차가 중앙로역으로 진입하면서 상황은 돌변했다. 2호 객차의 중간 부분에 체육복을 입고 앉아 있던 김대한(56·대구 서구 내당동)씨가 주머니에 있던 라이터를 꺼내 옆구리에 끼고 있던 흰색 플라스틱 우유통에 불을 붙이려 한 것. 불이 제대로 켜지지 않자 김씨는 다른 주머니에서 또 다른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려 했다. 옆에 있던 70대 할아버지가 "위험하게 왜 라이터를 켜느냐"고 나무랐고 승객들도 김씨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바라 보았다. 급기야 승객 박근태(朴根泰·36·남구 대명동)씨 등이 김씨와 몸싸움을 벌였지만 제지에는 실패했다. 김씨는 몇 차례 더 라이터를 켜 결국 인화물질이 든 것으로 보이는 우유통에 불을 붙였다. 불은 '퍽' 하고 퍼졌으며 김씨의 몸에도 옮겨 붙었다. 일부 승객이 김씨 몸에 붙은 불을 끄는 순간, 불은 좌석 등으로 빠르게 번져나갔고 전동차 안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승객들은 "불이야"하고 소리 지르면서 서로 먼저 전동차를 빠져나가려다 넘어지고 뒤엉켰다. 불이 난 객차의 앞(1호), 뒤(3호) 승객들은 화재 사실을 알아채고 급히 움직였지만 4∼6호차 승객은 불 난 사실을 모르고 있다. 검은 연기가 자욱하게 번지고서야 전동차에서 뛰어나와 역 출입구로 뛰어갔다. 그러나 이미 연기가 가득 차 방향 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생사의 기로에서 승객들은 뒤엉키고 넘어지면서도 필사의 탈출을 시도했다. 일부 여성 승객들은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비명과 울음이 뒤섞여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이 와중에서 숨진 김모(52·여)씨는 손가락이 모두 뭉개져 있어 사고 당시 처참한 상황을 보여주었다.

대곡역으로 가다 중앙로역에서 멈춘 반대편 전동차의 상황은 더 끔찍했다. 사고 전동차보다 조금 늦게 역에 도착해 문을 연 순간 갑자기 검은 연기가 전동차 안으로 밀려 들어오자 문을 닫고 15분을 기다렸다. 승객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리고 열어 달라고 소리치고 애원까지 했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집에 휴대전화를 걸어 "문이 열리지 않는다"며 발을 동동 구르는 여학생들도 많았다. 그 순간 전기가 나가면서 전동차 안은 암흑으로 변했다.

승객들이 공포 속에 기진맥진해있던 순간 "빨리 대피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일부 승객들은 수동 조작으로 출입문을 열고 나왔다. 그러나 5, 6호 객차 승객들은 수동으로도 문을 열지 못해 떼죽음을 당했다.

여기저기서 울음과 절규가 메아리 쳤지만 어디에도 구원의 손길은 없었다. 연기 속에서 우왕좌왕하는 사이 노약자 등 일부 승객은 질식해 현장에서 쓰러졌다.

/대구=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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